[특집] 4.16 국제 심포지움 돌아보기-세월호참사 10년,
부서진 세계의 틈에 질긴 생명의 나무를 심다
글 박희정
2024년 6월 20일과 21일 이틀간 “세월호참사 10년, 진실·책임·생명·안전을 말 하다”라는 주제로 4.16 국제 심포지움이 열렸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 서 진행된 이 행사는 세월호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 지난 10년간의 사회 변화 등을 살펴보고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기획되 었다. 재단법인 4·16재단, 세월호참사 10주기위원회,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가 공동주최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했다.
기조 발제| ‘어떤 생명은 덜 중요하다’는 ‘유독한 가치관’에 저항하라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박승렬 4‧16재단 이사장, 오혜란 4.16연대 공동대표의 개회사로 문을 연 4.16 국제 심포지움은 <래디컬 민주주의>의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와 박래군 4·16재단 운영위원장이 기조발제를 맡아 ‘재난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에 관해 이야기했다. 더글러스 러미스는 “누군가의 생명이 덜 중요하다”는 “유독한 가치관”에 저항하며 “인간의 존엄과 평등의 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기본적 원칙을 환기했다. 박래군 위원장은 세월호참사가 “재난을 대해온 한국 사회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전환한 사건”임을 짚었다. 참사 이후 10년이 흐르도록 여전히 안전을 외면하는 국가를 넘어서기 위해,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역량을 키워내야 함을 강조했다.
심포지움은 총 다섯 개의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세션 1은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보장 현황과 과제, 세션 2는 애도와 기억의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 세션 3은 재난참사 진상규명 과정의 평가와 숙제, 세션 4는 세월호참사 10년, 한국사회의 변화 및 과제로 진행됐으며 마지막 세션 5에는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세션 1| 재난 참사 피해자의 권리보장 현황과 과제
첫 번째 연사로 나선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센터장은 세월호참사 피해자 운동이 재난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어떻게 확장했는지 설명했다. 한국사회는 세월호참사 이후 인권의 관점에서 재난참사를 보기 시작했고, ‘피해구제’가 아닌 ‘피해자권리보장’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큰 물결을 이루어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가 만들어졌다. 이 중심에 선 주체가 바로 피해자들이다. 한국에서 일어난 여러 재난참사의 피해자들은 서로 연대하며 우리 사회의 인식과 제도를 바꾸어내고 있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박희정 씨는 이 사회가 부여한 ‘피해자다움’에 저항하며 다양한 활동의 장을 개척해온 세월호 가족들에 대해 발표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공방, 극단, 합창단 등의 문화예술 활동을 자기 치유의 도구이자, 투쟁의 도구, 시민들과 만나는 접점으로 바꿔냈다. 봉사단을 조직해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활동도 펼친다. 또한 피해자 스스로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양한 기록활동을 펼치고 있는 점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김민환 한신대 교수는 생명안전공원 설립을 위한 피해자 운동이 지닌 의미에 대해 말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통상적인 참사 수습 절차에서 추모사업은 ‘참사 수습이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배치되었다. 때로는 그마저도 생략됐다. 4.16생명안전공원은 일상적 시공간에 세워지는, 다시 말해 죽은 자의 공간과 산자의 공간을 분리하지 않는 최초의 추모사업이다. 김 교수는 “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갈등, 논쟁, 설득, 타협의 과정을 통해 부지가 결정된 것 그 자체로 중요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션 1에서는 해외 사례 발표가 있었다. 일본 아카시시 육교 압사 참사 유가족 시모무라 세이지 씨는 2012년 일본 국토교통성에 ‘대중교통사고 피해자 지원실’을 설치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2001년 7월 21일 참사가 일어난 후 반년 만에 유가족들도 수용할 수 있는 조사보고서가 나왔다. 그러나 이후 15년에 걸친 지난한 민·형사 재판 과정을 밟았다. 그 과정에서 설치된 대중교통사고 피해자 지원실은 대중교통사고 발생 시 정보제공 역할, 피해자가 일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중장기적 코디네이터로 기능한다.
1989년 4월 15일 영국 잉글랜드 셰필드에 있는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군중 압착으로 97명이 사망한 영국 힐즈버러 참사의 생존자 앤 에이어는 ‘술 취한 훌리건의 난동’으로 여겨졌던 이 참사의 원인을 ‘경찰의 잘못’으로 바로 잡는 데 걸린 23년에 대해 발표했다. 참사 20주기를 맞이해서 독립조사기구가 꾸려진 데에는 피해자와 시민들의 질긴 투쟁이 있었다.
세션 1의 토론자로는 정부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이 자리해 세월호참사 피해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했다. 4.16생명안전공원의 진척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유가족들은 마음을 졸이고 있다. 정부자 추모부서장은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행정의 적극적 태도와 시민들의 연대를 거듭 요청했다.
세션 2| 애도와 기억공동체의 현재와 미래
정원옥 문화사회연구소 대표는 세월호참사 후 10년간 시민들이 수행한 ‘애도의 정치’를 분석했다. ‘애도의 정치’란 정원옥 씨가 국가폭력에 의한 의문사 유가족들의 투쟁을 분석하며 개념화했다. 의문사는 죽음에 대한 진실에 접근할 수 없게 하는 정치·사회적 조건 속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남은 자’들은 진실을 밝히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들이 놓인 정치·사회적 조건을 바꿔내는 다양한 실천적 행동을 벌여나간다. 그것이 애도의 정치다. 세월호참사 이후 애도의 정치는 유가족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여기에 사회운동의 주변부에 있거나 정치에 무관심했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이태호 세월호참사10주기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은 세월호참사에 관한 사회운동의 배경과 특징을 짚었다. 세월호참사 피해자 및 시민이 함께한 ‘4.16운동’의 특징 첫 번째는 ‘기억투쟁’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두 번째, 피해자와 피해자단체의 적극적 역할이 초기부터 강력한 응집력을 발휘했다. 피해자들은 시민사회 협력자들과 연대하며 스스로 권리의 옹호자이자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었다. 세 번째 특징은 풀뿌리 네트워크다. 수많은 개인과 단체가 자립적이고 분산되었으나 유기적으로 연결된 수평적 관계망을 형성했다. 각 지역에 자발적인 시민 추모공간이 생겨났고, 이를 통해 애도와 기억의 거점, 풀뿌리 지역조직이 생겨났다는 점이 네 번째 특징이다. 다섯 번째 특징은 인권기반의 접근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 처벌을 넘어 새로운 국가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어서 기억공동체의 애도에 관한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9.11테러 유가족 옐레나 왓킨스는 피해자 연대와 공동체 재난 대응의 경험을 전했다. 강희숙 조선대학교 교수는 ‘광주세월호시민상주모임’과 ‘청소년촛불모임’ 사례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와 재난공동체의 의미를 고찰했다. 송경용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가 토론자로 나섰다. 송경용 대표는 생명의 가치가 최우선으로 될 수 있는 국가 체제, 정치 체제를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역사적, 회복적 정의와 함께 사법적 정의의 실현이 함께 가야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세션 3| 재난 참사 진상 규명 과정의 평가와 숙제
오민애 법무법인 율립 변호사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현황을 1. 침몰원인, 2. 구조방기, 3. 국가의 책임회피와 진상규명 방해로 나누어 정리했다. 세월호참사 책임자에 대한 재판이 거의 마무리된 지금 청해진해운 직원과 한국해운조합 관련자를 제외하면 처벌받은 사람은 현장에 출동한 123정장 한 명과 국군기무사령부 관련자 일부에 불과하다. 오민애 변호사는 “공식적인 기구를 통한 조사과정은 종료됐지만, 그 과정을 통해 확인된 내용은 우리가 계속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수사와 재판을 통한 책임규명에 중심이 있었다면 이제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중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오 변호사는 그 중심에는 여전히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연대를 통한 기억투쟁이 자리해야 함을 짚으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최희천 아시안전교육진흥원 연구소장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피해지원국장으로 세월호참사 조사기구의 역할과 남겨진 과제에 대해 짚었다. 최희천 소장은 “특별조사기구의 유용성에 대한 비판도 있고, 조사와 처벌을 같이 해야 하는가 분리해야 하는가 등 여러 쟁점이 있다”면서도 “독립조사기구는 중요한 사회적 결과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정부의 조사기구 지닌 본질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독립조사기구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최 소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가 주도하는 조사기구는 우선 조사 진행이 매우 느리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후 5년 만에 첫 해양안전심판 심리가 열린 것이 그 예다. 또한 사고를 둘러싼 여러 문제를 기술적인 문제로 환원시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태원 참사를 보면 기관들의 소통 문제가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정작 나오는 대책은 지능형 CCTV를 도입하겠다는 식이다. 또한 정부 조사기구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은 정부기관의 가치관과 시각에 따라 보기 쉽다. 정부 부처 담당자들은 안전한 길을 가려고 하고 책임에 대해서는 맡기 꺼리는 경향이 있다. 최 소장은 상설적 독립조사위원회 설치를 통해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고 재난참사 조사의 사회적 역량을 쌓아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세션 3는 김순길 세월호참사10주기위원회 집행위원장을 좌장으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인 김남희씨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김남희 씨는 형사처벌을 넘어선 사회구조적 책임규명을 강조했다. 김 씨는 “이태원참사의 책임자인 행정안전부 장관이 면죄부를 받은 이후에 오송참사가 발생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상설 중대재난조사위원회 설립 권고사항이 이행되어 정확한 원인 규명과, 안전대책 수립, 그리고 권고사항에 대한 이행 점검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세션 4| 세월호참사 10년, 한국사회의 변화 및 과제
이호영 국회고성연수원 교수는 세월호참사 이후 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 변화를 짚었다. 이 교수는 “수많은 재난 피해자와 유가족의 눈물로 만든” 안전관리 법안의 역사를 설명했다. 1994년 성수대교붕괴참사로 이듬해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1995년 삼풍백화점붕괴참사가 일어나면서 같은 해 ‘재난관리법’이 제정됐다. 그리고 2003년 대구지하철화재참사 이후 2004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재난 대응 관리체계가 확립되고 재난관리 전담기구인 소방방재청이 출범했다. 이호영 교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상호이질적인 ‘안전관리’와 ‘재난관리’가 혼합 편제돼있어 일관성과 통일성이 떨어지고 기본법임에도 개별조항이 집행법적 성격이 강해 혼란이 유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참사 이후 법과 제도에 상당한 개선이 있었으나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이호영 교수는 “돈과 이윤보다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치 실현을 위해 일반 시민 중심으로 안전이 적극 논의되고 이를 바탕으로 법률의 개선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로 발제를 마무리했다.
소준철 충남대학교 사회학과 강사는 세월호참사는 “참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참사”로 규정하고 세월호참사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 “누적된 위험의 경로”를 살펴보자고 제안했다. 소준철 씨는 국가는 ‘재난 관리 행위자’로서 존재하는데 이는 ‘심판자로서의 국가’와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가가 최종심급으로 등장해 자신을 책임에서 분리하며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재난대응에 있어서 제도개선은 필요하지만, 이는 자칫 국가를 가시화하는 효과로 작동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소준철 씨는 “제도개선을 넘어 국가의 연루가 인정되고 처벌되는 사회”로 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세션 5| 종합토론: 우리의 갈 길은 어디인가
종합토론에 앞서 정병택 ㈜에스티이노베이션 연구본부 본부장은 세월호참사에 대한 대국민인식조사 리서치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만 20세~75세 성인 2천명을 대상으로 2024년 5월 16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되었다는 응답은 28.9%로 나타났고, 조사 대상의 83.7%가 세월호참사에 국가책임이 있다고 응답했다. 세월호참사 이후 10년,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인지 묻는 질문에 69.9%가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안전하다는 응답은 26.9%에 불과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한 사회로 변화되었는가를 묻는 물음에는 64.3%가 변화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은 ‘4월 16일의 약속 운동’의 활동 경과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김 사무처장은 “국가가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구하지 않은 사건을 겪은 후, 이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가 ‘잠재적 피해자’이자 ‘우연한 생존자’라는 공감과 각성 속에서 다시는 세월호참사와 같은 재난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억하고 연대하고 행동하자는 다짐을 공통분모로 피해자들과 시민들 사이에 형성된 사회적 연대”를 4월 16일의 약속운동(약칭 4.16운동)이라고 정의했다. 4.16운동의 지향은 세월호참사 피해자의 권리 옹호와 실현이며, 생명존중 안전사회로의 전환이다. 4.16운동은 앞으로 기억공동체를 강화하고, 재난참사 피해자연대가 성장할 수 있게 지원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운동의 완수를 넘어 생명안전 운동으로 확장을 모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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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4.16 국제 심포지움 돌아보기-세월호참사 10년,
부서진 세계의 틈에 질긴 생명의 나무를 심다
글 박희정
2024년 6월 20일과 21일 이틀간 “세월호참사 10년, 진실·책임·생명·안전을 말 하다”라는 주제로 4.16 국제 심포지움이 열렸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 서 진행된 이 행사는 세월호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 지난 10년간의 사회 변화 등을 살펴보고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기획되 었다. 재단법인 4·16재단, 세월호참사 10주기위원회,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가 공동주최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했다.
기조 발제| ‘어떤 생명은 덜 중요하다’는 ‘유독한 가치관’에 저항하라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박승렬 4‧16재단 이사장, 오혜란 4.16연대 공동대표의 개회사로 문을 연 4.16 국제 심포지움은 <래디컬 민주주의>의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와 박래군 4·16재단 운영위원장이 기조발제를 맡아 ‘재난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에 관해 이야기했다. 더글러스 러미스는 “누군가의 생명이 덜 중요하다”는 “유독한 가치관”에 저항하며 “인간의 존엄과 평등의 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기본적 원칙을 환기했다. 박래군 위원장은 세월호참사가 “재난을 대해온 한국 사회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전환한 사건”임을 짚었다. 참사 이후 10년이 흐르도록 여전히 안전을 외면하는 국가를 넘어서기 위해,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역량을 키워내야 함을 강조했다.
심포지움은 총 다섯 개의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세션 1은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보장 현황과 과제, 세션 2는 애도와 기억의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 세션 3은 재난참사 진상규명 과정의 평가와 숙제, 세션 4는 세월호참사 10년, 한국사회의 변화 및 과제로 진행됐으며 마지막 세션 5에는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세션 1| 재난 참사 피해자의 권리보장 현황과 과제
첫 번째 연사로 나선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센터장은 세월호참사 피해자 운동이 재난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어떻게 확장했는지 설명했다. 한국사회는 세월호참사 이후 인권의 관점에서 재난참사를 보기 시작했고, ‘피해구제’가 아닌 ‘피해자권리보장’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큰 물결을 이루어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가 만들어졌다. 이 중심에 선 주체가 바로 피해자들이다. 한국에서 일어난 여러 재난참사의 피해자들은 서로 연대하며 우리 사회의 인식과 제도를 바꾸어내고 있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박희정 씨는 이 사회가 부여한 ‘피해자다움’에 저항하며 다양한 활동의 장을 개척해온 세월호 가족들에 대해 발표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공방, 극단, 합창단 등의 문화예술 활동을 자기 치유의 도구이자, 투쟁의 도구, 시민들과 만나는 접점으로 바꿔냈다. 봉사단을 조직해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활동도 펼친다. 또한 피해자 스스로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양한 기록활동을 펼치고 있는 점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김민환 한신대 교수는 생명안전공원 설립을 위한 피해자 운동이 지닌 의미에 대해 말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통상적인 참사 수습 절차에서 추모사업은 ‘참사 수습이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배치되었다. 때로는 그마저도 생략됐다. 4.16생명안전공원은 일상적 시공간에 세워지는, 다시 말해 죽은 자의 공간과 산자의 공간을 분리하지 않는 최초의 추모사업이다. 김 교수는 “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갈등, 논쟁, 설득, 타협의 과정을 통해 부지가 결정된 것 그 자체로 중요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션 1에서는 해외 사례 발표가 있었다. 일본 아카시시 육교 압사 참사 유가족 시모무라 세이지 씨는 2012년 일본 국토교통성에 ‘대중교통사고 피해자 지원실’을 설치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2001년 7월 21일 참사가 일어난 후 반년 만에 유가족들도 수용할 수 있는 조사보고서가 나왔다. 그러나 이후 15년에 걸친 지난한 민·형사 재판 과정을 밟았다. 그 과정에서 설치된 대중교통사고 피해자 지원실은 대중교통사고 발생 시 정보제공 역할, 피해자가 일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중장기적 코디네이터로 기능한다.
1989년 4월 15일 영국 잉글랜드 셰필드에 있는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군중 압착으로 97명이 사망한 영국 힐즈버러 참사의 생존자 앤 에이어는 ‘술 취한 훌리건의 난동’으로 여겨졌던 이 참사의 원인을 ‘경찰의 잘못’으로 바로 잡는 데 걸린 23년에 대해 발표했다. 참사 20주기를 맞이해서 독립조사기구가 꾸려진 데에는 피해자와 시민들의 질긴 투쟁이 있었다.
세션 1의 토론자로는 정부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이 자리해 세월호참사 피해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했다. 4.16생명안전공원의 진척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유가족들은 마음을 졸이고 있다. 정부자 추모부서장은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행정의 적극적 태도와 시민들의 연대를 거듭 요청했다.
세션 2| 애도와 기억공동체의 현재와 미래
정원옥 문화사회연구소 대표는 세월호참사 후 10년간 시민들이 수행한 ‘애도의 정치’를 분석했다. ‘애도의 정치’란 정원옥 씨가 국가폭력에 의한 의문사 유가족들의 투쟁을 분석하며 개념화했다. 의문사는 죽음에 대한 진실에 접근할 수 없게 하는 정치·사회적 조건 속에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남은 자’들은 진실을 밝히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들이 놓인 정치·사회적 조건을 바꿔내는 다양한 실천적 행동을 벌여나간다. 그것이 애도의 정치다. 세월호참사 이후 애도의 정치는 유가족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여기에 사회운동의 주변부에 있거나 정치에 무관심했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이태호 세월호참사10주기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은 세월호참사에 관한 사회운동의 배경과 특징을 짚었다. 세월호참사 피해자 및 시민이 함께한 ‘4.16운동’의 특징 첫 번째는 ‘기억투쟁’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두 번째, 피해자와 피해자단체의 적극적 역할이 초기부터 강력한 응집력을 발휘했다. 피해자들은 시민사회 협력자들과 연대하며 스스로 권리의 옹호자이자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었다. 세 번째 특징은 풀뿌리 네트워크다. 수많은 개인과 단체가 자립적이고 분산되었으나 유기적으로 연결된 수평적 관계망을 형성했다. 각 지역에 자발적인 시민 추모공간이 생겨났고, 이를 통해 애도와 기억의 거점, 풀뿌리 지역조직이 생겨났다는 점이 네 번째 특징이다. 다섯 번째 특징은 인권기반의 접근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 처벌을 넘어 새로운 국가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어서 기억공동체의 애도에 관한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9.11테러 유가족 옐레나 왓킨스는 피해자 연대와 공동체 재난 대응의 경험을 전했다. 강희숙 조선대학교 교수는 ‘광주세월호시민상주모임’과 ‘청소년촛불모임’ 사례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와 재난공동체의 의미를 고찰했다. 송경용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가 토론자로 나섰다. 송경용 대표는 생명의 가치가 최우선으로 될 수 있는 국가 체제, 정치 체제를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역사적, 회복적 정의와 함께 사법적 정의의 실현이 함께 가야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세션 3| 재난 참사 진상 규명 과정의 평가와 숙제
오민애 법무법인 율립 변호사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현황을 1. 침몰원인, 2. 구조방기, 3. 국가의 책임회피와 진상규명 방해로 나누어 정리했다. 세월호참사 책임자에 대한 재판이 거의 마무리된 지금 청해진해운 직원과 한국해운조합 관련자를 제외하면 처벌받은 사람은 현장에 출동한 123정장 한 명과 국군기무사령부 관련자 일부에 불과하다. 오민애 변호사는 “공식적인 기구를 통한 조사과정은 종료됐지만, 그 과정을 통해 확인된 내용은 우리가 계속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수사와 재판을 통한 책임규명에 중심이 있었다면 이제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중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오 변호사는 그 중심에는 여전히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연대를 통한 기억투쟁이 자리해야 함을 짚으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최희천 아시안전교육진흥원 연구소장은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피해지원국장으로 세월호참사 조사기구의 역할과 남겨진 과제에 대해 짚었다. 최희천 소장은 “특별조사기구의 유용성에 대한 비판도 있고, 조사와 처벌을 같이 해야 하는가 분리해야 하는가 등 여러 쟁점이 있다”면서도 “독립조사기구는 중요한 사회적 결과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정부의 조사기구 지닌 본질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독립조사기구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최 소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가 주도하는 조사기구는 우선 조사 진행이 매우 느리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후 5년 만에 첫 해양안전심판 심리가 열린 것이 그 예다. 또한 사고를 둘러싼 여러 문제를 기술적인 문제로 환원시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태원 참사를 보면 기관들의 소통 문제가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정작 나오는 대책은 지능형 CCTV를 도입하겠다는 식이다. 또한 정부 조사기구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은 정부기관의 가치관과 시각에 따라 보기 쉽다. 정부 부처 담당자들은 안전한 길을 가려고 하고 책임에 대해서는 맡기 꺼리는 경향이 있다. 최 소장은 상설적 독립조사위원회 설치를 통해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고 재난참사 조사의 사회적 역량을 쌓아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세션 3는 김순길 세월호참사10주기위원회 집행위원장을 좌장으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인 김남희씨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김남희 씨는 형사처벌을 넘어선 사회구조적 책임규명을 강조했다. 김 씨는 “이태원참사의 책임자인 행정안전부 장관이 면죄부를 받은 이후에 오송참사가 발생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상설 중대재난조사위원회 설립 권고사항이 이행되어 정확한 원인 규명과, 안전대책 수립, 그리고 권고사항에 대한 이행 점검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세션 4| 세월호참사 10년, 한국사회의 변화 및 과제
이호영 국회고성연수원 교수는 세월호참사 이후 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 변화를 짚었다. 이 교수는 “수많은 재난 피해자와 유가족의 눈물로 만든” 안전관리 법안의 역사를 설명했다. 1994년 성수대교붕괴참사로 이듬해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1995년 삼풍백화점붕괴참사가 일어나면서 같은 해 ‘재난관리법’이 제정됐다. 그리고 2003년 대구지하철화재참사 이후 2004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재난 대응 관리체계가 확립되고 재난관리 전담기구인 소방방재청이 출범했다. 이호영 교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상호이질적인 ‘안전관리’와 ‘재난관리’가 혼합 편제돼있어 일관성과 통일성이 떨어지고 기본법임에도 개별조항이 집행법적 성격이 강해 혼란이 유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참사 이후 법과 제도에 상당한 개선이 있었으나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이호영 교수는 “돈과 이윤보다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치 실현을 위해 일반 시민 중심으로 안전이 적극 논의되고 이를 바탕으로 법률의 개선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로 발제를 마무리했다.
소준철 충남대학교 사회학과 강사는 세월호참사는 “참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참사”로 규정하고 세월호참사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 “누적된 위험의 경로”를 살펴보자고 제안했다. 소준철 씨는 국가는 ‘재난 관리 행위자’로서 존재하는데 이는 ‘심판자로서의 국가’와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가가 최종심급으로 등장해 자신을 책임에서 분리하며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재난대응에 있어서 제도개선은 필요하지만, 이는 자칫 국가를 가시화하는 효과로 작동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소준철 씨는 “제도개선을 넘어 국가의 연루가 인정되고 처벌되는 사회”로 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세션 5| 종합토론: 우리의 갈 길은 어디인가
종합토론에 앞서 정병택 ㈜에스티이노베이션 연구본부 본부장은 세월호참사에 대한 대국민인식조사 리서치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만 20세~75세 성인 2천명을 대상으로 2024년 5월 16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되었다는 응답은 28.9%로 나타났고, 조사 대상의 83.7%가 세월호참사에 국가책임이 있다고 응답했다. 세월호참사 이후 10년,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인지 묻는 질문에 69.9%가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안전하다는 응답은 26.9%에 불과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한 사회로 변화되었는가를 묻는 물음에는 64.3%가 변화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은 ‘4월 16일의 약속 운동’의 활동 경과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김 사무처장은 “국가가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구하지 않은 사건을 겪은 후, 이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가 ‘잠재적 피해자’이자 ‘우연한 생존자’라는 공감과 각성 속에서 다시는 세월호참사와 같은 재난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억하고 연대하고 행동하자는 다짐을 공통분모로 피해자들과 시민들 사이에 형성된 사회적 연대”를 4월 16일의 약속운동(약칭 4.16운동)이라고 정의했다. 4.16운동의 지향은 세월호참사 피해자의 권리 옹호와 실현이며, 생명존중 안전사회로의 전환이다. 4.16운동은 앞으로 기억공동체를 강화하고, 재난참사 피해자연대가 성장할 수 있게 지원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운동의 완수를 넘어 생명안전 운동으로 확장을 모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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