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스토리]“우리는 오늘 집으로 돌아갑니다” 제주 청소년, 안전한 세상을 향해 페달을 밟다
-4.16 청소년 자전거 순례단 <집으로 가는 길>
안녕하세요. 제주에 사는 박서희입니다. 저는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됐어요.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등학교 언니, 오빠들과 같은 나이가 된 거죠. 그래서인지 매년 맞이하 는 4월 16일이 올해는 더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더구나 10주기라고 하니 더 행동하고 싶었어요. 제주 청소년들과 어떤 활동을 해 볼까 함께 이야기를 나눴어요. 우리는 단 원고 언니 오빠들의 수학여행지였던 제주에 살고 있잖아요. 작년 9주기에 제주 청소 년들은 단원고 학생들이 제주에 안전하게 도착했다면 가봤을 장소들을 다녀왔어요. 언니 오빠들이 가지 못한 수학여행을 우리가 마무리했으니, 올해는 언니 오빠들의 그 리운 집 안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자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우리의 이름을 ‘4.16 청소년 자전거 순례단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지었어요. 올해 4월 9일 제주를 떠난 우리는 목포, 광주, 전주, 정읍, 부여, 천안, 수원을 거쳐 4월 16일에 안산에 도착했어요. 그 과정에서 각 지역 청소년들도 합류했죠. 그 여정을 사진과 글로 전할게요!
2024년 4월 9일 제주 → 목포 배타고 이동
2024년 4월 10일
목포 → 광주
자전거 대행진의 첫날, 아침부터 일사불란하게 움 직였다. 자전거가 차도로 주행해도 된다는 걸 처 음 알았다. 옆으로 택시, 트럭, 화물차, 대형버스 등 온갖 자동차가 지나가니 긴장됐다. 곳곳에서 우리를 격려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의 여 정에 많은 사람들의 애정이 담겨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길을 걷거나 배를 타거나 노동을 하다 언 제든지 죽을 수 있는 세상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 다. 충분히 예측하고 막을 수 있는 죽음이 나날이 쌓여간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안전해질 것을 요구하며 달리고 있다. 노란 자전거 행진을 보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세월호를 떠올리고 짧은 묵념 을 남길지 모른다. 그러한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 람 불어나 행진 끝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월 호를 잠시라도 기억 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면 우 리가 하는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어둠을 밝히고 있다. -우다솔
2024년 4월 11일
광주 → 정읍
광주에서 정읍까지 총 93.3km를 달렸다. 오늘 코스 에는 굉장히 가파르고 긴 오르막이 있었다. 7박 8일 자전거 순례 중에서 가장 가파른 오르막이라고 했 다. 오르막길을 1분 정도 오르고 나니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고 허리가 아팠다. 포기하고 발을 땅에 딛고 싶다는 생각이 수만 번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올 라가고 있는데 눈앞에 순례단이 보였다. 앞뒤에 있 는 친구들 모두 힘든 기색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페 달을 구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 의 페달에도 힘을 실어 올라갈 수 있었다. 다 올라가 니 굉장히 뿌듯했다. 동시에 이 수고와 열정이 세월 호 유가족분들 그리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랐다. -조승호
2024년 4월 12일
정읍 → 전주
세월호참사, 살면서 그 이름을 들을 적이면 어 김없이 그쪽으로 흐르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눈물이 나왔습니다. 제주 에서 안산까지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자전거 를 굴리며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존재 그대로 안전한 세상을 향해 세월호를 기억하며 페달을 밟습니다. 길가 상점 유리에 비친 노란 우리가 너울거립니다. 마치 각 지역에 잠든 세월호의 기억을 깨우는 듯 합니다.
우리의 여정에 도움을 주신 분들을 떠올려 봅 니다. 먹을 것부터 잠자리까지 여러 사람의 손 길을 거치지 아니한 곳이 없습니다. 달리는 것 은 20명의 학생들이지만 사실 세월호를 향한 마음으로 모이고 뭉친 아주 커다란 우리가 달 리고 있습니다. 저에게 세월호는 너와 내가 아 닌 ‘우리’가 되는 연습입니다. 연대의 힘이 강하 다는 것을 의심치 않으며, 우리는 긴 파도처럼 힘차게 나아가 안산까지 도착할 것입니다. - 우다솔
2024년 4월 13일
전주 → 부여
오늘은 거의 80km 거리를 라이딩했다. 첫날은 무 척 힘들었는데 오늘은 적응이 돼서 그런지 안장통 도 없고 허벅지도 괜찮았다. 하지만 세월호의 아 픔은 적응이 되려야 될 수가 없다. 세월호에 대해 들을 때마다 다른 감정이 올라온다. 어떨 때는 분 노가 느껴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슬픔이 올라온 다. 이렇듯 세월호참사는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 아있을 아픔”이라는 가사처럼 우리의 마음에 남 아있다. 특히 유가족들이 밤마다 이 상처에 시달 리실 것을 생각하니 하루빨리 진상규명이 되어서 이 상처를 조금이나마 씻어 내셨으면 좋겠다는 생 각이 들었다. 우리가 부여까지 달려오면서 본 아 름다운 벚꽂이 세월호 유가족들께도 아름답게 보 일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날을 위해 우리는 끝까 지 달릴 것이다. -박성우
2024년 4월 14일
부여 → 천안
오늘 완주하고 나서 두 번째로 세월호 캠페인을 했다. 캠페인 장소가 협소하고 사람도 많다고 해서 걱정했다. 역시나 현장에 가보니 서울 한복판의 퇴근 시간을 방불케 했다. 우리가 이곳에서 캠페인 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많으니까 길 한복판에서 발언문을 읽고 춤추고 노래 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순례단이 아닌 것처럼 팻말로 얼굴을 가리고 뻘줌하게 서 있었다. 그 러다 갑자기 내 행동이 캠페인의 본질적인 의미를 흐리게 한다는 걸 자각했다. 첫 번째 발언문 읽기 가 끝난 뒤 플래시몹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해 춤을 췄다. 많은 사람들에게 세월호를 알리자는 목표로 다시 초점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계속 그렇게 시도 하다보니 오히려 부끄러웠던 마음은 사라 지고 자신감이 올라오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보며 무 슨 생각을 할까 눈치를 봤다. 그 생각을 이렇게 바꿔보았다. 어쩌면 나의 행동이 한 사람의 가슴을 울렸을 수도 있다고. 나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하고 그 메시지에 자신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행 동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응답을 해 줄 것 이다. -조승호
2024년 4월 15일
천안 → 수원
이번 자전거 행진은 제주에서 안산까지 약 500km를 넘게 달린다. 오늘은 천안에서부터 이곳 까지 73km를 달려왔으며 내일이면 안산에 도착한다. 자전거 순례를 하는 이유는 세월호참사
희생자분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인데, 사회적 참사와 국가폭력이 일어나지 않는 미래를 바 라는 우리의 실천이기도 하다. 먼 길을 달리며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많이 느꼈다. 그러나 우 리의 노란 물결을 같이 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다시 한번 더 페달을 굴 리게 되었다. 내일 안산까지 25km를 달리는 마지막 코스에는 특별히 초등학교 6학년부터 다 양한 나이대의 청소년들이 같이 달린다. 내일은 4월 16일, 이제부터 청소년들이 먼저 행동한 다. 내일도 열심히 달릴 것이다. -조승호
2024년 4월 16일
수원 → 안산
이렇게 우리는 ‘집’까지 잘 도착했습니다. 제주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목포, 광주, 정읍, 전주, 부여, 천안, 수원, 그리고 안산까지 27명의 청소년과 순례단원들이 7박 8일간 하루에 100km 가까운 거리를 자전거를 타면서 세월호를 기억했습니다. 노란색 아크릴로 하나하나 정성스레 칠한 헬멧을 착용하고 노란 옷을 입 고 자전거를 타니 마치 노란 물결들이 출렁이는 것 같아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자전거를 타며 힘들 때가 수시로 찾아왔지만, 세월호 희생자분들과 유가족분들을 생각하면 차마 발에서 페달을 땔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힘듦은 일시적이지만 희생자분들과 유가족분들의 아픔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달리면서 수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린 어떠한 이야기를 마음에 새겨야 할까. 순례를 전부 마치고 나니 순례하며 얻은 교훈들을 나의 마음속에 단단히 심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투쟁하고 계신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고, 희생자분들을 기억하고 싶었으 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더욱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순례를 떠났습니다. 우리의 작은 움직 임으로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다는 것, 이 몸짓이 누군가에겐 큰 힘이 되고 의미가 크다는 것을 알 기에 순례를 끝까지 마쳤던 것 같습니다.
우리 순례단이 바란 것은 단 하나입니다. 차를 타다, 길을 걸어가다, 아니면 일상생활을 하다가 단 10초만 이라도 우리를 보며 세월호를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기억은 힘이 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이 작은 발걸음이 되었기를 희망하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행동을 이어나가겠다고 다짐합니다.
[포토스토리]“우리는 오늘 집으로 돌아갑니다” 제주 청소년, 안전한 세상을 향해 페달을 밟다
-4.16 청소년 자전거 순례단 <집으로 가는 길>
안녕하세요. 제주에 사는 박서희입니다. 저는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됐어요.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등학교 언니, 오빠들과 같은 나이가 된 거죠. 그래서인지 매년 맞이하 는 4월 16일이 올해는 더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더구나 10주기라고 하니 더 행동하고 싶었어요. 제주 청소년들과 어떤 활동을 해 볼까 함께 이야기를 나눴어요. 우리는 단 원고 언니 오빠들의 수학여행지였던 제주에 살고 있잖아요. 작년 9주기에 제주 청소 년들은 단원고 학생들이 제주에 안전하게 도착했다면 가봤을 장소들을 다녀왔어요. 언니 오빠들이 가지 못한 수학여행을 우리가 마무리했으니, 올해는 언니 오빠들의 그 리운 집 안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자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우리의 이름을 ‘4.16 청소년 자전거 순례단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지었어요. 올해 4월 9일 제주를 떠난 우리는 목포, 광주, 전주, 정읍, 부여, 천안, 수원을 거쳐 4월 16일에 안산에 도착했어요. 그 과정에서 각 지역 청소년들도 합류했죠. 그 여정을 사진과 글로 전할게요!
2024년 4월 9일 제주 → 목포 배타고 이동
2024년 4월 10일
목포 → 광주
자전거 대행진의 첫날, 아침부터 일사불란하게 움 직였다. 자전거가 차도로 주행해도 된다는 걸 처 음 알았다. 옆으로 택시, 트럭, 화물차, 대형버스 등 온갖 자동차가 지나가니 긴장됐다. 곳곳에서 우리를 격려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의 여 정에 많은 사람들의 애정이 담겨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길을 걷거나 배를 타거나 노동을 하다 언 제든지 죽을 수 있는 세상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 다. 충분히 예측하고 막을 수 있는 죽음이 나날이 쌓여간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안전해질 것을 요구하며 달리고 있다. 노란 자전거 행진을 보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세월호를 떠올리고 짧은 묵념 을 남길지 모른다. 그러한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 람 불어나 행진 끝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월 호를 잠시라도 기억 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면 우 리가 하는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어둠을 밝히고 있다. -우다솔
2024년 4월 11일
광주 → 정읍
광주에서 정읍까지 총 93.3km를 달렸다. 오늘 코스 에는 굉장히 가파르고 긴 오르막이 있었다. 7박 8일 자전거 순례 중에서 가장 가파른 오르막이라고 했 다. 오르막길을 1분 정도 오르고 나니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고 허리가 아팠다. 포기하고 발을 땅에 딛고 싶다는 생각이 수만 번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올 라가고 있는데 눈앞에 순례단이 보였다. 앞뒤에 있 는 친구들 모두 힘든 기색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페 달을 구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 의 페달에도 힘을 실어 올라갈 수 있었다. 다 올라가 니 굉장히 뿌듯했다. 동시에 이 수고와 열정이 세월 호 유가족분들 그리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랐다. -조승호
2024년 4월 12일
정읍 → 전주
세월호참사, 살면서 그 이름을 들을 적이면 어 김없이 그쪽으로 흐르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눈물이 나왔습니다. 제주 에서 안산까지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자전거 를 굴리며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존재 그대로 안전한 세상을 향해 세월호를 기억하며 페달을 밟습니다. 길가 상점 유리에 비친 노란 우리가 너울거립니다. 마치 각 지역에 잠든 세월호의 기억을 깨우는 듯 합니다.
우리의 여정에 도움을 주신 분들을 떠올려 봅 니다. 먹을 것부터 잠자리까지 여러 사람의 손 길을 거치지 아니한 곳이 없습니다. 달리는 것 은 20명의 학생들이지만 사실 세월호를 향한 마음으로 모이고 뭉친 아주 커다란 우리가 달 리고 있습니다. 저에게 세월호는 너와 내가 아 닌 ‘우리’가 되는 연습입니다. 연대의 힘이 강하 다는 것을 의심치 않으며, 우리는 긴 파도처럼 힘차게 나아가 안산까지 도착할 것입니다. - 우다솔
2024년 4월 13일
전주 → 부여
오늘은 거의 80km 거리를 라이딩했다. 첫날은 무 척 힘들었는데 오늘은 적응이 돼서 그런지 안장통 도 없고 허벅지도 괜찮았다. 하지만 세월호의 아 픔은 적응이 되려야 될 수가 없다. 세월호에 대해 들을 때마다 다른 감정이 올라온다. 어떨 때는 분 노가 느껴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슬픔이 올라온 다. 이렇듯 세월호참사는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 아있을 아픔”이라는 가사처럼 우리의 마음에 남 아있다. 특히 유가족들이 밤마다 이 상처에 시달 리실 것을 생각하니 하루빨리 진상규명이 되어서 이 상처를 조금이나마 씻어 내셨으면 좋겠다는 생 각이 들었다. 우리가 부여까지 달려오면서 본 아 름다운 벚꽂이 세월호 유가족들께도 아름답게 보 일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날을 위해 우리는 끝까 지 달릴 것이다. -박성우
2024년 4월 14일
부여 → 천안
오늘 완주하고 나서 두 번째로 세월호 캠페인을 했다. 캠페인 장소가 협소하고 사람도 많다고 해서 걱정했다. 역시나 현장에 가보니 서울 한복판의 퇴근 시간을 방불케 했다. 우리가 이곳에서 캠페인 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많으니까 길 한복판에서 발언문을 읽고 춤추고 노래 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순례단이 아닌 것처럼 팻말로 얼굴을 가리고 뻘줌하게 서 있었다. 그 러다 갑자기 내 행동이 캠페인의 본질적인 의미를 흐리게 한다는 걸 자각했다. 첫 번째 발언문 읽기 가 끝난 뒤 플래시몹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해 춤을 췄다. 많은 사람들에게 세월호를 알리자는 목표로 다시 초점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계속 그렇게 시도 하다보니 오히려 부끄러웠던 마음은 사라 지고 자신감이 올라오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보며 무 슨 생각을 할까 눈치를 봤다. 그 생각을 이렇게 바꿔보았다. 어쩌면 나의 행동이 한 사람의 가슴을 울렸을 수도 있다고. 나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하고 그 메시지에 자신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행 동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응답을 해 줄 것 이다. -조승호
2024년 4월 15일
천안 → 수원
이번 자전거 행진은 제주에서 안산까지 약 500km를 넘게 달린다. 오늘은 천안에서부터 이곳 까지 73km를 달려왔으며 내일이면 안산에 도착한다. 자전거 순례를 하는 이유는 세월호참사
희생자분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인데, 사회적 참사와 국가폭력이 일어나지 않는 미래를 바 라는 우리의 실천이기도 하다. 먼 길을 달리며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많이 느꼈다. 그러나 우 리의 노란 물결을 같이 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다시 한번 더 페달을 굴 리게 되었다. 내일 안산까지 25km를 달리는 마지막 코스에는 특별히 초등학교 6학년부터 다 양한 나이대의 청소년들이 같이 달린다. 내일은 4월 16일, 이제부터 청소년들이 먼저 행동한 다. 내일도 열심히 달릴 것이다. -조승호
2024년 4월 16일
수원 → 안산
이렇게 우리는 ‘집’까지 잘 도착했습니다. 제주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목포, 광주, 정읍, 전주, 부여, 천안, 수원, 그리고 안산까지 27명의 청소년과 순례단원들이 7박 8일간 하루에 100km 가까운 거리를 자전거를 타면서 세월호를 기억했습니다. 노란색 아크릴로 하나하나 정성스레 칠한 헬멧을 착용하고 노란 옷을 입 고 자전거를 타니 마치 노란 물결들이 출렁이는 것 같아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자전거를 타며 힘들 때가 수시로 찾아왔지만, 세월호 희생자분들과 유가족분들을 생각하면 차마 발에서 페달을 땔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힘듦은 일시적이지만 희생자분들과 유가족분들의 아픔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달리면서 수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린 어떠한 이야기를 마음에 새겨야 할까. 순례를 전부 마치고 나니 순례하며 얻은 교훈들을 나의 마음속에 단단히 심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투쟁하고 계신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고, 희생자분들을 기억하고 싶었으 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더욱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순례를 떠났습니다. 우리의 작은 움직 임으로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다는 것, 이 몸짓이 누군가에겐 큰 힘이 되고 의미가 크다는 것을 알 기에 순례를 끝까지 마쳤던 것 같습니다.
우리 순례단이 바란 것은 단 하나입니다. 차를 타다, 길을 걸어가다, 아니면 일상생활을 하다가 단 10초만 이라도 우리를 보며 세월호를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기억은 힘이 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이 작은 발걸음이 되었기를 희망하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행동을 이어나가겠다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