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 진실을 향한 여정,이제 우리의 이야기에 집중할 시간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남은 질문들
오민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흘렀다.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검경합동수사 본부와 국회 국정조사를 시작으로 감사원 감사, 해양안전심판원 조사, 세 차례의 위원 회 활동이 있었다. 또한 검찰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선체조사위위원회(선조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수사와 관계기관의 자체 조사 등이 있었다.
일련의 조사와 검찰 수사,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구체적으로 물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연대의 힘으로 만들어낸 조사기구가 활동을 마친 지금도 규명할 과제가 존재한다.
진상규명이 얼마나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이들의 생각이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4.16연대에서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해 왔던 것들을 토대로, 앞으로 우리가 계속 밝혀가야 할, 함께 고민해나가야 할 과제를 몇 가지 정리해 보려고 한다.
개인의 행위를 넘어 종합적 분석으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처벌 받은 해경은 현장에 출동했던 123정장 1명뿐이다. 그렇다면 현장에 출동한 123정장만 책임이 있고, 해경지휘부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뜻일까?
수사와 재판은 개인에게 처벌의 방식으로 책임을 묻는다. 그러니 대상이 된 개인의 구체적 행위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둘 수밖에 없다. 또한 법원이 그동안 해석하고 적용해 온 법리에 맞춰서 그 행위를 판단한다. 그러므로 '해경지휘부가 형사책임을 지지 않았다'라는 말이 곧바로 '해경지휘부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책임이 없다'라는 말이 되는 게 아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수사기관과 법원은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인 원인에 대해 깊이 고민할 이유가 없다. 수사와 재판의 대상이 된 개인을 중심으로 살피기 때문이다(물론 수사 기관과 법원은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개인의 책임을 부정하는 근거로 고려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책임자처벌'은 진상규명의 한 과정이자 방법일 수는 있어도 전부일 수는 없다.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수사와 재판 결과만으로 그날 정부가 희생자를 구하지 않은 책임에 대해 모두 밝혔다고 할 수는 없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응뿐만 아니라 그동안 재난 상황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해왔는지, 유사 사례에 대한 대응과 훈련을 어떻게 해왔는지, 나아가 당일 해경과 청와대, 관련 기관들의 대응에 대한 종합적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중요한 구조적 책임을 묻는 일은 조사기구를 통해서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참사 당일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다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왜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동안 조사,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자료와 내용을 토대로 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과 규명이 필요하다.
무엇이 빠져있나
한편 세월호 참사 직후 검찰 수사가 진행됐지만, 해경지휘부는 2019년 검찰 특별수사단에 의해서야 수사가 진행되고 기소되었다. 당시 법무부장관 등에 의한 수사외압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에 대해서는 조사기구도 검찰도 다루지 않았다.
또한 국가기관이 세월호 참사를 지우고 진상규명 요구를 왜곡하려는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밝혀진 바가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정보원이 참사 이후 유가족과 시민을 사찰하고 정보를 수집했다는 의혹, 정보경찰이 유가족들을 상대로 정보활동을 수행했다는 의혹 등이 제기됐다.
국가정보원의 경우, 사참위가 관련 자료를 요청하고 조사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국정원은 자료 제공에 협조적이지 않았다. 사참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경찰의 경우 경찰청 내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2017)를 꾸려 자체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권고 등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시민을 상대로 한 정보경찰의 정보 활동은 포함되지 않았다.
선조위와 사참위가 활동을 마쳤지만, 침몰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침몰 원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선조위가 내인설과 열린안이라는 두 가지 결론을 내놓으면서 사참위 활동은 선조위 결론에 대한 검증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사참위가 활동을 마칠 시점까지도 침몰 원인에 대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조사기구 활동 과정에서 이루어진 여러 연구, 조사기구 안팎에서 제기된 쟁점들에 관한 연구와 검증이 필요하다.
기억의 연대가 곧 길이다
그날 왜 구하지 않았는지, 해경지휘부는 어째서 참사 발생 후 5년이 지나서야 수사 대상에 올라 재판을 받게 됐는지, 정보기관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염원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억누르려 했는지, 왜 그날 세월호는 침몰하였는지, 앞으로 계속 밝혀내야 할 우리의 과제들이다. 그럼 우리는 이러한 진상규명 과제를 어떻게 밝혀낼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에 관하여 우리가 무엇을 밝혀냈고 무엇을 더 밝혀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과정이 곧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하나의 길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곧 진상규명을 멈추지 않는 힘이 될 것이다.
조사기구의 활동, 수사, 재판을 거치면서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 참사에 관한 많은 자료와 기록이 축적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개진된 다양한 의견들도 존재한다.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우리가 더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 각자가 생각하는 진상규명의 현황과 과제를 같이 이야기하고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진상규명의 현황', '진상규명 과제'라는 건조한 단어 뒤에는 유가족분들과 시민들의 연대가 다져온 10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다. 세월호 참사를 함께 기억하고 분노하는 수많은 마음이 모여 끊임없는 진상규명 활동이 가능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5년 만에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 만들어지고 해경지휘부와 특조위 조사 활동을 방해했던 당시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재판이 가능했던 것도, 사참위가 만들어지고 3년 6개월간 조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기억과 연대의 결과였다.
지금까지는 조사와 수사 과정, 그리고 그 결과에 조금 더 무게를 두었다면, 앞으로는 이를 포함해 지난 10년간의 진상규명 과정에서 확인된 것들을 토대로 우리의 이야기에 집중할 시간이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를 함께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계속할 가장 큰 뿌리가 되고, 동시에 우리 사회가 좀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진상규명] 진실을 향한 여정,이제 우리의 이야기에 집중할 시간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남은 질문들
오민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흘렀다.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검경합동수사 본부와 국회 국정조사를 시작으로 감사원 감사, 해양안전심판원 조사, 세 차례의 위원 회 활동이 있었다. 또한 검찰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선체조사위위원회(선조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수사와 관계기관의 자체 조사 등이 있었다.
일련의 조사와 검찰 수사,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구체적으로 물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연대의 힘으로 만들어낸 조사기구가 활동을 마친 지금도 규명할 과제가 존재한다.
진상규명이 얼마나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이들의 생각이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4.16연대에서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해 왔던 것들을 토대로, 앞으로 우리가 계속 밝혀가야 할, 함께 고민해나가야 할 과제를 몇 가지 정리해 보려고 한다.
개인의 행위를 넘어 종합적 분석으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처벌 받은 해경은 현장에 출동했던 123정장 1명뿐이다. 그렇다면 현장에 출동한 123정장만 책임이 있고, 해경지휘부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뜻일까?
수사와 재판은 개인에게 처벌의 방식으로 책임을 묻는다. 그러니 대상이 된 개인의 구체적 행위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둘 수밖에 없다. 또한 법원이 그동안 해석하고 적용해 온 법리에 맞춰서 그 행위를 판단한다. 그러므로 '해경지휘부가 형사책임을 지지 않았다'라는 말이 곧바로 '해경지휘부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책임이 없다'라는 말이 되는 게 아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수사기관과 법원은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인 원인에 대해 깊이 고민할 이유가 없다. 수사와 재판의 대상이 된 개인을 중심으로 살피기 때문이다(물론 수사 기관과 법원은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개인의 책임을 부정하는 근거로 고려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책임자처벌'은 진상규명의 한 과정이자 방법일 수는 있어도 전부일 수는 없다.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수사와 재판 결과만으로 그날 정부가 희생자를 구하지 않은 책임에 대해 모두 밝혔다고 할 수는 없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응뿐만 아니라 그동안 재난 상황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해왔는지, 유사 사례에 대한 대응과 훈련을 어떻게 해왔는지, 나아가 당일 해경과 청와대, 관련 기관들의 대응에 대한 종합적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중요한 구조적 책임을 묻는 일은 조사기구를 통해서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참사 당일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다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왜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동안 조사,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자료와 내용을 토대로 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과 규명이 필요하다.
무엇이 빠져있나
한편 세월호 참사 직후 검찰 수사가 진행됐지만, 해경지휘부는 2019년 검찰 특별수사단에 의해서야 수사가 진행되고 기소되었다. 당시 법무부장관 등에 의한 수사외압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에 대해서는 조사기구도 검찰도 다루지 않았다.
또한 국가기관이 세월호 참사를 지우고 진상규명 요구를 왜곡하려는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밝혀진 바가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정보원이 참사 이후 유가족과 시민을 사찰하고 정보를 수집했다는 의혹, 정보경찰이 유가족들을 상대로 정보활동을 수행했다는 의혹 등이 제기됐다.
국가정보원의 경우, 사참위가 관련 자료를 요청하고 조사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국정원은 자료 제공에 협조적이지 않았다. 사참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경찰의 경우 경찰청 내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2017)를 꾸려 자체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권고 등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시민을 상대로 한 정보경찰의 정보 활동은 포함되지 않았다.
선조위와 사참위가 활동을 마쳤지만, 침몰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침몰 원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선조위가 내인설과 열린안이라는 두 가지 결론을 내놓으면서 사참위 활동은 선조위 결론에 대한 검증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사참위가 활동을 마칠 시점까지도 침몰 원인에 대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조사기구 활동 과정에서 이루어진 여러 연구, 조사기구 안팎에서 제기된 쟁점들에 관한 연구와 검증이 필요하다.
기억의 연대가 곧 길이다
그날 왜 구하지 않았는지, 해경지휘부는 어째서 참사 발생 후 5년이 지나서야 수사 대상에 올라 재판을 받게 됐는지, 정보기관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염원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억누르려 했는지, 왜 그날 세월호는 침몰하였는지, 앞으로 계속 밝혀내야 할 우리의 과제들이다. 그럼 우리는 이러한 진상규명 과제를 어떻게 밝혀낼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에 관하여 우리가 무엇을 밝혀냈고 무엇을 더 밝혀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과정이 곧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하나의 길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곧 진상규명을 멈추지 않는 힘이 될 것이다.
조사기구의 활동, 수사, 재판을 거치면서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 참사에 관한 많은 자료와 기록이 축적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개진된 다양한 의견들도 존재한다.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우리가 더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 각자가 생각하는 진상규명의 현황과 과제를 같이 이야기하고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진상규명의 현황', '진상규명 과제'라는 건조한 단어 뒤에는 유가족분들과 시민들의 연대가 다져온 10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다. 세월호 참사를 함께 기억하고 분노하는 수많은 마음이 모여 끊임없는 진상규명 활동이 가능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5년 만에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 만들어지고 해경지휘부와 특조위 조사 활동을 방해했던 당시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재판이 가능했던 것도, 사참위가 만들어지고 3년 6개월간 조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기억과 연대의 결과였다.
지금까지는 조사와 수사 과정, 그리고 그 결과에 조금 더 무게를 두었다면, 앞으로는 이를 포함해 지난 10년간의 진상규명 과정에서 확인된 것들을 토대로 우리의 이야기에 집중할 시간이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를 함께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계속할 가장 큰 뿌리가 되고, 동시에 우리 사회가 좀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