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4월의 기억과 약속

25
3월



2025년 2월 13일.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4.16생명안전공원 착공식이 열렸습니다. <세월호 피해지원법>에 명시된 ‘추모공원 조성 및 추모기념관 건립’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1년이 지나서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명존중과 안전사회 건설의 이정표가 될 4.16생명안전공원이 잘 만들어질 수 있도록, 4·16재단에서는 공원이 완공될 때까지 매월 공사가 진행되는 소식과 함께 다양한 분야에서 공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글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합니다.

 



4월의 기억과 약속

2021년 1월, 저의 노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4.16생명안전공원의 설계 공모 지침을 준비하면서 4.16의 이해와 공감을 서술한 것입니다. 12년이 지난 지금, 다시 쓰더라도 당시의 내용에서 특별히 수정할 부분이 없다는 사실은 4.16의 시간은 여전히 현재임을 알게 합니다.

 

*4월의 단어들: 생명, 안전, 희생, 책임, 약속, 기억, 공감

그들이 떠난 후 우리는 해마다 특별한 4월을 맞고 있다. 이제 4.16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생명과 안전, 희생의 뜻을 담은 고유명사가 되었다. 희생은 한 사람의 살아온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개인으로, 가족의 일원으로, 그리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쌓은 삶의 흔적이 지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 교실에 남겨진 빈 자리들, 돌아오지 못한 발걸음들은 묻고 또 묻는다. 우리는 생명을 얼마나 무겁게 여기고 있었는가?

생명은 수식이 필요 없는 최고의 가치다. 불가피, 부득이 등, 그 어떠한 상황이나 변명의 뒤에 놓일 수 없는 절대적 가치다. 그러나 그날 우리 사회는 생명이 우선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 앞에서 무너졌다. 그 원칙은 너무 늦게, 너무 약하게 작동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되묻는다. 왜 더 빨리 구하지 못했는가? 왜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제, 이 물음은 과거에 대한 질책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요구여야 한다. 생명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안전은 구호가 아니다. 사람의 사람을 위한 행동 지침이다. 안전은 훈련된 습관이어야 하며, 지켜야 하는 원칙이며, 실천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안전 매뉴얼은 책상 위에 있을 때가 아니라, 현장에서, 위기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책임을 다한다. 책임은 눈물이나 사과로 가벼워질 수 없다. 희생 앞의 책임은 더구나, 용서로 끝을 낼 수 없다. 책임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대비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 희생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와 정책을 바꾸는 일, 그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이자 책임이며 약속이다.

약속을, 우리는 그날 이후 수없이 들었다. 재발방지, 제도개선, 안전사회 …. 그러나 약속은 반복될수록 가벼워진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기억은 필요하다. 기억은 희생을 잊지 않는 마음, 약속을 무겁게 만드는 힘이다. 잊지 않는 사회만이 스스로 약속을 지킬 수 있다. 기억은 또한, 공감의 토대다. 공감은 희생자 가족을 위한 가장 따뜻한 위로다. 같은 시선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아픔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가족의 노력에 동참할 때, 비로소 공감은 완성된다.

우리는 모두, 같은 사회의 구성원이다. 누군가의 아들딸이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은, 결국 우리 공동체 전체의 아픔으로 남는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4.16을 떠올리면 먹먹해지는 이유다.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 역시 여전히 진행중이다. 시간이 흘러도 아픔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계절은 되풀이되고 날짜는 바뀌어도 기억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그 시간을 견디며 진실을 요구하고, 책임을 묻고, 안전한 사회를 외쳐 온, 가족들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를 부끄럽게 했고, 동시에 단단하게도 했다.

그 소리는 단지, 개인의 아픔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와 사회를 향한 요구다.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요청이며, 국가의 존재 이유를 잊지 말라는 경고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이 말이 안전사회를 위한 대원칙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4.16의 공감과 공간>

저는 2020년 9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약 2년간, ‘4.16생명안전공원 국제설계공모’의 운영위원장과 설계과정의 전문위원장을 맡아 50회 이상의 회의와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생명안전공원 설립의 설계공모 운영에 동참함으로써, 떠난 생명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떳떳해지고, 제 공감의 온도를 높이고 싶었습니다. 당시, 세월호 잔해를 보며 울음을 삼켰던 저의 기억은 아득했고 마치 남의 일처럼 살았기에, 마치 문책하듯, 저를 남은 자들의 꾹꾹 눌러 담은 아픔 앞에 마주 서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참여하기 이전, 6년간 진행된 피해지원, 추모사업, 추모공간 등을 위한 법, 제도, 용역 등의 과정은 매우 지지부진하였기에 그들의 속은 이미 숯이 되어 있었고, 저의 마음도 무거워져 말을 건네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니 가족들에게서 나온 감정의 언어와 표정은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음을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분들과의 만나는 시공간은 일반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가족협의회의 김종기 운영위원장, 유경근 집행위원장 두 분의 형형한 눈빛, 사업부서장 정부자님의 결기 어린 미소, 슬픔조차 말라버린 듯한 가족들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따뜻함을 표현할 시간과 장소를 잃어버린 그분들의 모습은 지금도 마음을 촉촉하게 합니다.

2020년 말 4.16 진상규명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진상규명 활동이 마무리되자 가족들이 거세게 저항하면서 설계공모가 중단될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습니다. 2021년 11월 19일, 매서운 추위의 청와대 앞 시위 현장으로 가서 당시 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님을 만난 일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설계는 중단없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간곡하게 설득하여 위기를 넘겼습니다만 그것이 그들을 위한 저의 책임이고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4.16생명안전공원의 설계는 4.16에 함의된 뜻을 실제 공간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첫 단계는 그동안 수없이 되새겼던 생명, 안전, 희생, 책임, 약속, 기억, 공감 등의 단어를 설계공모 지침에 녹여 넣는 일이었습니다. 이 내용들은 기억과 생성의 공간, 각성과 질문의 공간, 애도와 추모의 공간 등 세 가지 영역으로 표현하고, 이는 다시 일상과 참사의 사회적 기억과 공존 공간, 4.16관련 콘텐츠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전시공간, 희생자들의 봉안공간, 생명과 안전을 논의하는 교육공간, 시민참여형 문화공간이라는 다섯 가지 기능으로 구체화하여 설계 기준에 담았습니다. 특히 참여 건축가들에게 ‘4.16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의 형식과 태도’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요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디자인의 출발점이 4.16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설계공모 지침서는 떠난 그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형식과 내용으로 정리되었습니다.

2021년 2월 9일. 국제설계공모로 공고하고 현장설명회, 질의회신, 홍보과정을 거쳐 참여의사 등록 200개, 최종 75개(외국 40개사, 국내 35개사) 작품이 제출되어 4.16이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심사 과정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영상/음성기록 모두를 공개로 진행하였으며, 2021년 4월 5일 1차 심사를 개최하여 2차 진출작 5개 안을 선정했고, 2021년 6월 25일에 5개 작품을 대상으로 2차 본심사를 진행하여 당선작을 결정하였습니다. 공모 이후 설계과정에서는 봉안시설의 구조와 형식, 4.16생명안전공원과 화랑유원지의 여러 시설들과의 관계를 고려한 외부 공간계획과 동선 정리, 특히 호수와의 관계 등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실시설계와 예산 조정이라는 힘들고 긴 과정을 거쳐 2025년 2월 13일 착공식을 진행하였습니다. 12년!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를 다시, 묻게 합니다. 우리 모두가 서툴러서일까? 가족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서일까? 생명안전의 길이 힘들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일까? 여러 핑계를 동원해도 허망함은 감추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허망을 희망으로 바꿀 2027년 가을에는, 드디어 그 공간에서 떠나간 생명들을 위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두의 생각을 담은 공간의 이름도 새로이 붙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설계는 지어진 공간을 채우고 운영하는 일로 완성이 될 것입니다.

<4.16생명안전공원 국제설계공모 당선작>

<좌 : 4.16생명안전공원 국제설계공모  2등 당선작 / 우 : 4.16생명안전공원 국제설계공모  3등 당선작>

<좌 : 4.16생명안전공원 국제설계공모  4등 당선작 / 우 : 4.16생명안전공원 국제설계공모  5등 당선작>

 

<기억과 약속>

4월의 희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합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 안전을 위한 책임, 약속에 대한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4월 앞에 떳떳해질 수 있습니다. 떠난 생명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법은 별처럼 많습니다. 시간을 앞세우고 가시적 공간이나 형태를 만들어 추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희생을 기억하는 가장 단단한 방법은, 생명 안전이 최우선의 가치가 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이 우선이 되는 법, 안전에 책임을 다하는 제도, 위기 속에서의 생명구조 원칙을 세우는 일입니다. 4.16생명안전공원의 완공이 그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여전히 차가운 4월의 바다를,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시간에 기대는 망각은 가장 쉬운 선택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우리를 질문하게 하고 행동하게 하며 불편하게 합니다. 그 불편함을 감수할 때 사회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봄은 약속한 듯, 어김없이 돌아옵니다. 꽃은 피고, 바람도 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은 압니다. 그 봄이 완전히 가벼워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돌아오는 봄처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약속해야 합니다. 생명을 앞세우는 나라, 안전이 습관인 사회, 희생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그 약속이 이어질 때, 4월은 희생의 달을 넘어 생명의 달이 될 것입니다.

 


 

** 4.16생명안전공원 건립 진행 과정을 사진으로 담아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



 4.16생명안전공원의 3월 공사 현장 (2026.3.23.)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면서 새싹이 올라오고 꽃봉오리가 열리기 시작하는 3월입니다.

4.16생명안전공원도 본격적인 골조 공사를 위한 기초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지하 공간 공사를 위해 흙을 파내고, 주변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흙막이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 과정이 완료되면 콘크리트 타설 공사가 시작됩니다. 앞으로 진행될 공사에도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