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도서 소개]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

2022-07-04


책 소개

2014년 6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의 청원 속에 세월호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에는 세월호 조사를 검찰이나 경찰이 아닌 재난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철저하게 조사하라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겨있었다. 그 후, 정부는 대한민국 최초의 단일 재난조사위원회인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를 만들었고,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선조위’), 사회적참사위원회(이하 ‘사참위’)로 이어졌다.
그러나 특조위는 강제 해산됐고, 선조위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결론짓지 못하고, 양립할 수없는 내인설과 외력설을 모두 담았으며, 사참위 또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마무리되고 있다. 도대체 왜, 시민들의 간절한 열망 속에서 무려 8년간, 세 개의 국가기구를 통해 진행된 세월호 재난 조사가 성과를 내지 못햇을까? 참사의 원인은 왜 밝혀내지 못했으며, 제대로 된 책임을 지는 이들은 없는 것인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간다.


목차

추천의 말
책을 펴내며 |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 재난조사?
1장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
1. 무엇을 바꾸고 싶었나
2.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운동에 담긴 상이한 요구들
3. 안전사회운동이 떠오르다
4. 국가 폭력 담론
5. 국가란 무엇인가
2장 우리는 왜 재난을 조사하는가
1. 해외의 재난조사
2. 한국의 재난조사
3. 원칙과 딜레마
4. 한국의 독특한 재난 인식론
3장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1. 위원회 구성부터 예견된 한계
2. 특조위의 혼란
3. 사법적 조사와 정책 연구로 나뉘다
4. 특조위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
4장 2016~2017년 탄핵 정국과
선체조사위원회의 출범
1. 촛불집회와 세월호 참사의 재소환
2. 진상규명 운동의 재난 인식론은 어떻게 바뀌었나
3. 징검다리 위원회의 출범
5장 선체조사위원회의 두 보고서
1. 새로운 문제와 반복된 문제
2. 침몰 원인 논쟁
3. 두 보고서가 의미하는 것
결론 | 재난조사와 책임


추천글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에 실패했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구나 자신이 그 실패의 일부였음을 인정하는 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저자에게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바로 그런 일이었다. 세월호 조사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종결했을 때, 저자는 잠시 좌절한 다음 곧 회의록과 보고서를 읽어나갔다. 실패한 재난조사의 기록에는 한국 현대사의 고통스런 궤적과 한심한 정치적 다툼, 무능과 비겁과 어리석음,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고통이 있었다. 저자가 관찰하고 분석하며 또 고백하고 성찰하는 실패에서 우리는 마지막 배움의 기회를 얻는다. 세월호 이후 우리는 과연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인가?
- 전치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생생했던 지난 고통을 반추할 수밖에 없었기에 이 책의 초안을 읽는 동안 너무 아팠습니다. 원망도 컸습니다. 솔직히 이 책은 너무 늦게 나왔습니다. 나처럼, 우리처럼 또 다른 누군가는 유가족이 되지 않기를, 또 나처럼, 우리처럼 뼈아픈 시행착오를 경험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기에 이 책을 계기로 재난참사의 조사방법과 조사기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광범위하게 시작되면 좋겠습니다
- 장훈 

이 책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오늘까지의 답’을 내놓고 있다. 조사위원회 일원으로 참여했던 저자는 홀로 답을 찾아나섰다. 한국 사회 그 자체가 빚어낸 사건이라던 세월호 참사가 음모론으로 빠져들고 진상규명 운동이 사그라드는 과정과 이유, 책임을 집요하게 짚어낸다. 지금 멈춰 서서 그 여정을 돌아보지 않으면 우리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읽는 독자가 늘어날수록 이 책은 ‘어제의 기록’이 아니라 ‘내일의 지침’이 되리라 믿는다.
- 정은주 (《한겨레》 기자)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한국일보 2022년 7월 8일자 '책과 세상'>


저자 및 역자 소개

박상은 (지은이)

사회단체 5년 차,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역사적 맥락에서 세월호 참사를 보고 싶어 대형사고 사례 분석을 했고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라는 책을 썼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안전위원회 안전대안팀에서 일하면서 노동안전운동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문제의식을 배웠다.

2015년~2016년 세월호 참사 특조위 조사관으로 일했다. 안전사회과에서는 주로 대형사고 사례 분석과 규제완화 관련 과제, 세월호 도입 및 검사 관련 자료 검토를 진행했으며, 진상규명국에서는 주로 청해진해운 임직원들에 대한 조사를 담당했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세월호 재난 조사 왜 실패했나?
사회는 재난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나?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이어진 세월호 재난 조사를 실패로 규정하고, 그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는 책이다.

2014년 6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의 청원 속에 세월호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에는 세월호 조사를 검찰이나 경찰이 아닌 재난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철저하게 조사하라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겨있었다. 그 후, 정부는 대한민국 최초의 단일 재난조사위원회인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를 만들었고,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선조위’), 사회적참사위원회(이하 ‘사참위’)로 이어졌다.

그러나 특조위는 강제 해산됐고, 선조위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결론짓지 못하고, 양립할 수없는 내인설과 외력설을 모두 담았으며, 사참위 또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마무리되고 있다.

도대체 왜, 시민들의 간절한 열망 속에서 무려 8년간, 세 개의 국가기구를 통해 진행된 세월호 재난 조사가 성과를 내지 못햇을까? 참사의 원인은 왜 밝혀내지 못했으며, 제대로 된 책임을 지는 이들은 없는 것인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간다.

8년간, 세 개의 세월호조사위원회에 모두 참여한 저자, 특조위와 선조위를 돌아보다.

저자 박상은은 안전사회를 지향하는 시민활동가로 세월호 특별법 운동에 참여했고, 특조위에는 조사관으로, 선조위와 사참위에는 종합보고서 외부 집필진으로 세월호 조사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중심에서 일한 내부자,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한 기록자의 시선으로 특조위와 선조위를 들여다본다. 재난조사위원회의 탄생 배경과 설립 과정, 인력 배치와 구성원의 특징, 조사 방법과 조사 순서, 결론을 결정하는 과정과 수용에 이르기까지 두 위원회의 모든 것에 현미경과 망원경의 시선으로, 실패의 원인을 분석했다.

2022년 6월 조사위원의 임기가 만료되고, 9월 공식적으로 활동을 종료할 사참위는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았으나, 사참위가 앞서 진행된 두 위원회 활동의 유산 위에서 조사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재난조사, 과학의 장이 아니라 정치의 장

왜 세월호 참사 조사는 성과를 내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유력한 설명들이 있다.
제일 먼저 꼽히는 것이 사고를 책임지고, 수습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조사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 발생⋅구조⋅ 수습 과정에서 책임이 있는 박근혜 정부에서 3년, 그 책임을 제기하며 정권교체를 한 문재인 정부에서 5년동안 조사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 이유는 성립되지 않는다.

또 재난조사의 전례가 없는 우리나라의 사고 조사 수준이 미흡했고 ‘고의 침몰설’, ‘잠수함 침몰설’ 과 같은 비과학적인 음모론이 제대로 된 재난조사를 막는 걸림돌이 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부분적 이유가 될 수 있을지언정, 전체를 아우르는 원인으로서는 미흡하다.

저자는 이 ‘단순하지 않은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재난조사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 - 즉, 만인이 이견 없이 합의할 수 있는 ‘과학적 조사 방법’ 같은 것이 있다는 - 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재난조사’의 장이 실은 조사하는 자와 조사받는 자, 재난에 책임이 있는 여러 기관과 인물,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이 경험하고 타협하는 ‘정치의 장’ 이라는 전제 위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힌다.

시간과 자원만 주어진다면 전문가들이 재난조사에 객관적인 답을 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선조위에서 세월호의 침몰 원인에 대한 전문가들의 답은 하나로 통일되지 못했다. 그것은 전문가들의 전문 지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재난조사를 통해 답해야 하는 정치적 질문을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재난조사위원회가 재난과 연관된 다양한 행위자들의 경합과 협상의 장이라는 점은 재난조사위원회가 과학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을 의미한다.(139)

특조위는 왜 독자적인 조사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까? 조사 신청을 받아서 이를 바탕으로 조사 방향을 설정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출범 초기부터 활동 기한 논란이 있었던 특조위가 이러한 방법을 선택한 이유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호중 위원은 한 인터뷰에서 특조위가 ‘중립성의 덫’에 걸려있다고 표현한 바 있다. 외부의 정치적 대결 구도가 내부에도 강하게 작동하는 상황에서 많은 위원들이 중립적으로 보이지 않을 경우 받을 공격을 우려했던 것이다. (181)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부의 비협조와 방해가 피할 수 없는 기본 조건이었음을 생각해볼 때, 특조위가 성과를 내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방해와 정치적 갈등 그 자체가 아니다. 갈등을 피하겠다는 명분 뒤에 숨어 조사 의제·방향·관점에 대한 토론을 회피한 것이다. (184)

사법적 조사에 대한 몰입, 구조적 원인 조사는 사라져…

그렇다면, 세월호 조사가 실패로 끝난 이유는 무엇인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은 책임 문제가 매우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렵게 제기됐기 때문에, 조사가 어려움을 겪었다고 본다. 재난은 많은 행위자들의, 개별적으로는,

결정적이지 않은 잘못과 실수로 발생하지만, 대중은 그 중 결정적 책임자가 누구인지 묻는다. 바로 여기에 재난 책임[재난조사?] 고유의 딜레마가 있다.

세월호 피해자들은 선사와 승무원에 이어 국가기관의 고위층에게 사법적 책임을 물으려 했지만, 이 시도는 계속 좌절됐다. 사법적 책임 중심의 문제의식은 법률가 중심으로 위원을 선임하는 배경이 됐다.

사법적 책임을 묻는 시도가 실패하면 실패할수록, 처벌을 위한 사법적 조사는 중요한 가치로 부상했고, 급기야 그것만이 세월호 재난조사의 성패를 결정짓는 기준처럼 대두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재난조사의 중요한 축인 구조적 원인 규명은 희미해져 갔다.

법적 처벌에 방점이 찍혀있기는 하지만 소극적으로든 적극적으 로든 구조적 원인 조사에 대한 지향이 특조위 내에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지향과 별개로 특조위는 구조적 원인 조사를 위해 어떤 방법과 계획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지 연구나 토론을 진행하지 않았다. 지향과 실행 사이의 격차는 재난조사위원회의 역할을 수사기관의 역할과 유사한 것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조사위원회는 수사기관이 다룰 수 없는 영역을 담당하는 역할과 수사기관을 대신하는 역할 사이에서 후자로 기울었다.

사법적 원인 규명과 구조적 원인 규명을 동시에 추구한다며 각각의 과제를 담당하는 부서를 분리한 방식은 최소한 특조위에서는 실패했다. 직접적 충돌은 없었지만 조사 내용을 서로 비교했을때 진상규명소위원회와 안전사회소위원회의 가설이나 재난을 바라보는 관점은 완전히 달랐다. 구조 실패와 관련해 진상규명소위원회가 123정이 의도적으로 선원을 먼저 구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라고 본 반면, 안전사회소위원회는 해상사고에 대한 정부의 구조 역량이 갖춰져 있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라고 보았다.(207)

만약 사법적 조사만 진행한 결과, 공식적인 조사 결과의 권고 상당수가 검찰, 감사원, 법원에 판단을 넘기는 방식으로 제출되고 구조적 원인 규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면, 특별법 제정 운동기에 검찰이 받았던 비판적인 평가를 특조위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강제 종료는 특조위 자신의 무책임한 선택과 역량 부족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가 되었다.(217)

과거사위원회 소환과 국가폭력 담론

저자는 세월호 재난조사 실패의 배경에 한국의 특수성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조위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사위원회들을 선례로 삼아 세월호 특별법을 구성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그 과정에서 과거사위원회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기술적 조사가 필요한 재난조사의 특성은 고려되지 않았고, 사고 이후 정부가 보여준 무책임과 진상규명 방해 의혹으로 국가폭력 담론이 강하게 제기됐다.

과거사위원회의 경험을 계속해서 소환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라는 재난을 의문사 사건이나 5·18 광주 항쟁과 같은 직접적인 국가 폭력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국정원 등 비밀스럽고 위압적인 국가기관에 대한 의혹이 대두된 상황에서 권위주의 정권 시기의 의문사 사건과 세월호 참사를 비교하는 것은 의도치 않아도 일종의 방향성을 지니게 되었다. ‘국가의 조직적 무책임성’혹 은 ‘부작위에 의한 국가 폭력’에 가까운 재난에서의 국가 책임은 ‘의도에 의한 국가 폭력’이었던 권위주의 정권 시기 국가 책임과 혼동되기 시작했다.(76)

세월호 참사를 국가 폭력으로 보자는 말을 ‘부작위도 국가 폭력으로 해석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와 국가 폭력의 유비는 오히려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인격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에서 국가 폭력 프레임을 강조한 당시의 전략이 맞았을까? 국가 폭력 프레임 채택이 일정 정도는 불가피했더라도, 국가 폭력 정의의 모호성에 계속 기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해를 확산시킬 시도 들을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사회운동은 그 씨앗을 제대로 뿌리지 못했다.

선조위는 왜 두 개의 보고서를 냈을까?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에선 그동안 논란이 됐던 선조위의 두 개의 보고서 - 내인설과 외력설,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한 종합보고서가 탄생한 이유를 추적했다.

선조위는 특조위에 비해 기술적 조사에 집중하도록 설계된 위원회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에서 세월호 부분은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그에 대한 반발로 정권의 첵임을 물어야 한다는 열망이 뜨거운 상황에서 출범했다. 참사 관련 정부 책임자들 대부분이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도 선조위를 강하게 압박했다. 저자는 선조위가 법정활동 기한 종료를 채 일주일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재난조사 역사상 유례없는 두 개의 보고서를 내기로 결정한 배경에 이런 압박감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외력 검증 TF는 외력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외력이 작용했다면 어떤 외력인지, 무엇을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검토해야 하는지 가설을 제시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포항 지진의 경우 자연 지진론 대 유발 지질론을 주장하는 학자 들이 자기 가설을 입증하려 했다면, 71 세월호 선조위 내부의 논쟁은 ‘내인설 대 외력설’이라기보다 최종 보고서의 명칭대로 ‘내인설대 열린 결론’이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회의록에는 반복적으로 ‘외력을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외력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 목표라는 점이 언급된다. (284)

선조위 조사관 대부분, 브룩스벨·마린 등 외국의 전문기관은 모두 외력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진영론적 사고와 책임의 인격화로 인해 선조위는 내인설의 압도적 우세 속에서도 피해자 가족과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에 내인 설을 충분히 설득하고 확산시키지 못했다.(302)

선조위의 두 개의 보고서는 재난조사의 종결에 관한 쟁점을 제기한다. 특조위가 외부의 방해와 신청사건 형태의 조사 방식 선택으로 초기부터 공식적인 종결을 할 수 없었던 조건이었다면, 선조위는 결론에 이를만한 조사를 진행하고도 공식적인 종결의 거부를 능동적으로 택했다. 선조위의 종결 거부라는 선택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나로 작성된 보고서를 불과 일주일 전에 찢어서라도 외력설의 가능성을 무겁게 남겨두려는 선택은 어떤 효과를 남겼나.

밝혀진 사실들은 분명 늘어났다. 그러나 선조위 종료 이후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아는 것은 더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서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303)

세월호 재난 조사, 우리가 잃어버린 질문들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가 제기한 많은 질문들을 제대로 묻지 못하게 되었다.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 개인 처벌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재난조사란 어떻게 가능한가? 권력을 가진 이들을 면제하지도, 우리자신을 면제하지도 않는 사회적 책임의 방식은 무엇인가? 이 거대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점점 앙상해져 갔다.(8)

평범하게 흘러가는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은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고, 한 사회가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재난조사 실패는 실패로서만 머물러선 안 된다.

저자는 이 실패기를 통해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명확히 밝히고, 내일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동안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9.11 테러, 인도 보팔 참사,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 등 해외 재난조사를 소개하고 세월호 조사와 비교한 것도 한국의 재난조사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리려는 저자의 노력이다.

굳이 실패를 헤집는 작업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 때면 한 단원고 희생자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2016년 여름 특조위 강제 종료에 항의하는 단식농성장에서, 그는 조사위원회가 잘못하거나 성과 없이 끝나면 결국 그 비난과 책임을 유가족이 지게 된다고 말했다 (중략) 피해자 가족의 그런 태도 때문에 나는 사회운동과 조사위원회의 무능과 실수, 선의였으나 의도치 않은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피해자 가족들은 너무 많은 책임을 진 반면, 우리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