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어린 피해자들’
세월호참사에서 이태원참사까지, 10년간 마음속에 품어온 이야기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는 이제는 20대 후반 청년의 삶을 살고 있는, 세월호참사 당시의 생존자, 형제자매, 시민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단원고 생존자 9명, 희생자의 형제자매 6명, 20대 시민 연대자 2명, 그리고 단원고 생존자들이 참여한 단체 등을 인터뷰하고 ‘세월호 청(소)년’이 자신 앞의 재난에 마주 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록했다. 독자들은 그들이 ‘어린 피해자’로서 겪은 차별 경험을 읽으며, 어쩌면 우리 사회 전체가 피해자에 대한 낙인과 비난에 동참해왔던 것은 아닌지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청(소)년이 마주해온 열 번의 봄은 어땠는가
저는 그때 팽목에 갔어야 했어요. 이후에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거기서 겪어내야 했어요. 참사가 벌어진 뒤에 지금까지 ‘당시 나는 팽목에 없었지’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살았어요. 팽목에 갔다면 충격이 컸을 거예요. 그로 인해 힘들었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겪지 않아서 남은 부채의식, 죄책감이 있어요. 이 죄책감이 다른 죄책감하고 합쳐져요. 시민들에게만 ‘기억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계속 물었어요. ‘너는 잘 기억하고 있어?’(이 책 338면)
세월호참사를 떠올리는 이들은 2014년 4월 16일 오전 당시 상황을 꽤 또렷이 기억한다. 전 국민적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두가 TV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아파했던 경험은, 그 뒤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에 온 국민이 관심을 갖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다만 이에 비해서, 참사 이후 피해자들에게 찾아온 또 다른 고통을 섬세하게 살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대형 재난참사였던 만큼 생존자와 유가족 형제자매 등이 겪은 후유증이 남달랐음에도 이에 대한 대응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 책의 작가들이 ‘세월호 청(소)년’을 만나고자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참사의 본질은 사건 ‘이후’에 있는지도 모른다. 생존자와 유가족, 형제자매가 처한 ‘어린 피해자’라는 위치는 참사 이후 1년 사이에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헤집어놓았기 때문이다. 십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삶은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기어코 다시 들어야 했다.”(이 책 5면)
단원고 생존학생과 유가족 형제자매 중에서 구술자를 찾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작가들은 어째서 유가족 부모들에 비해 생존자와 형제자매를 만나기 쉽지 않은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생존자와 형제자매는 대다수 ‘당신은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편견에 큰 상처를 받아왔다. 생존자들은 ‘당신은 그래도 살아 있지 않은가’라는 힐난에 시달렸고, 형제자매들은 ‘당신은 자식 잃은 부모가 아니지 않나’라는 핀잔에 당황해했다. 그러다 보니 10년이 지난 지금 그들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고작 “저도 말해도 되나요?”였다. 이 같은 서성임을 지켜보며 작가들은 이것이야말로 ‘세월호 청(소)년’ ‘세월호세대’의 10년을 기록해야 할 이유임을 직감한다.
우리에겐 과연 ‘생존자 감수성’이라는 게 있을까
세월호참사를 겪으며 다양한 경험을 치른 이들의 이야기에는 우리의 “영혼을 포박하는 각별함”(7면)이 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들이닥친 대형 재난, 그리고 그 어수선한 와중에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조용히 삶을 꾸려온 이들만이 갖게 된 어떤 힘이 있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런 각별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말하게끔 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가 생존자와 형제자매에게 이야기를 듣는 방식은 전형적이었다. 이제는 그저 녹음기를 켜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고 자신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서사’를 가다듬을 시간을 주어야 한다. 작가들은 그들의 관점에서 참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 때를 기다려왔다.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그들이 ‘도움 받아야 할 피해자’에서 ‘자기 언어를 지닌 정치적 주체’로 탈바꿈하는 것이고, 작가들의 역할 또한 그들의 전환을 돕는 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총 다섯 개 부로 이뤄진다. 각각 9명의 생존자들, 6명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2명의 세월호세대 청년들의 육성기록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단원고 생존자 편이다. 그들은 4월 16일 참사 당시 구조된 이후 안산의 고려대병원에서 입원했다가 4월 30일부터 6월 24일까지 안산 중소기업연수원에서 지냈다. 그러고 나서 단원고로 복귀하여 학교생활을 이어갔고 그 뒤로 사회에 진출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그때의 생생한 이야기는 그들이 참사 후의 고통을 각자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해왔는가를 보여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 술자리에서 동기들에게 제가 단원고 생존자라고 먼저 말을 꺼냈어요. 4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들이니까 이제는 이야기할 때가 됐다 싶었거든요. 근데, 이미 다 알고 있더라고요. ‘너 알았어?’ ‘너희 진짜 알았어?’ 제가 놀라서 막 물어보고. (웃음) 다들 모르는 척하고 있었던 거예요, 졸업할 때까지. 알고도 티 내지 않았던 거죠. 되게 고마웠어요.”(20면) 생존자 한수영 씨를 배려해온 친구와 동료의 노력은, 이처럼 생존자들이 자기 마음속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이처럼 생존자들의 마음을 여는 데에는 단지 며칠간의 심리 상담이나 마음 치유, 금전적인 보상이 큰 역할을 하지 못함은 분명하다. 한수영 씨의 친구들이 4년간 단 한번도 ‘생존자’ 운운하지 않고 은근히 곁을 지켜준던 것처럼 전 사회적으로 피해자를 대하는 어떤 공동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생존자 김도연 씨는 그것을 가리켜 ‘생존자 감수성’이라고 명명한다. “생존자 감수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 사회에는 그게 없다고 느낀 순간이 진짜 많았어요. 참사 초기에 하루 이틀 심리상담으로 내 상태를 판단하고는 전문가랍시고 임의로 보상금을 지정하는 것도 기괴했어요. 이 보상금이라는 게 뭘까? 국가가 사과한다는 의미인가? (…) 무엇 하나 제대로 규정되지 않은 채 자기들이 임의로 지정한 돈을 주고 나면 우리는 그저 괜찮아져야 하는 건가? 그걸로 사건이 끝났다고 보는 것도, 책임을 다한 게 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죠. 왜 우리가 아파도 되는 정도와 기간을, 애도하는 기간을 사회에서 정하고 그 기한을 넘어서면 유난을 떠는 것처럼 대하는 건지도.”(53면)
유가족 형제자매들 또한 단원고 생존자들과 다를 바 없이, 자신이 유가족인 사실을 함구하며 살아왔다. 이 책의 ‘두 번째 이야기’는 형제자매들이 지난 10년간 자기 정체성을 극히 일부만 드러낸 채 살아온 궤적을 보여준다. “세월호참사 유가족이라는 게 설명하기 참 어려운 위치잖아요.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라는 것도 있으니, 나를 밝혔을 때 상대가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돼요. (…) 이제 남은 가족들 어떡하니?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라지만 참사 나고 한동안은 그런 말을 듣는 것조차도 싫더라고요. 특히 저는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으니까 어른들이나 친구들이 그냥 별 생각 없이 ‘아빠는 무슨 일 하셔?’라고 묻는 게 너무 불편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부모님은 뭐 하세요?’ 이런 거 안 물어봐요.”(117면) 그래도 그들은 조금씩 차근차근 마음을 열어가고 있다. 여전히 이해 안 되는 일투성이지만 그럼에도 형제의 부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아직도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지만, 요즘은 그래도 조금씩 오빠 이야기를 꺼내요. 오늘은 오빠 생각이 나네, 오빠 한번 보고 싶다, 이렇게.”(172~73면)
재난참사에 대해 말하는 ‘더 나은 방법’
‘세 번째 이야기’는 어떤 전환기에 선 생존자들의 삶에 대해 들려준다. 생존자 이시우는 참사 당시 ‘나만 살아 나왔다’라는 죄책감이 새로운 감정으로 변화해가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먼저 떠난 친구들을 떠올릴 때 친구들 몫까지 다해야겠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어요. 주체 없이 책임감만 있었던 거죠. 지금은 거기에 내가 추가된 느낌?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하는데 내가 들어온 느낌? 이제는 내가 잘 사는 게 친구들 몫을 해내는 것과 같다고 느껴요. 그래야 나중에 친구들이 잘 살았다고 해줄 것 같아요. 어쨌든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거구나, 내 인생이니까.”(212면)
생존자들이 느끼는 책임감은 조금씩 그 범위를 넓혀간다. 그들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참사 생존자들을 보면서 강한 동질감과 연대감을 느낀다. “세월호참사 9주기 때 10.29 이태원참사 생존자와 함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만나보니 저보다 한 살 어린 분이더라고요. 자기만 살아서 나왔다는 생각 때문에 죄책감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233면)
이 책에는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생이었지만 수학여행을 가지 않아 그 뒤로 ‘피해자와 생존자’라는 이분법 아래에서 ‘잔류학생’으로 소외되어버린 청년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참사 현장에 없었다는 이유로, 피해자도 생존자도 아닌 제3의 지대에서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 이의 불안정한 삶의 이야기는 ‘참사 피해자란 누구인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아직도 세월호 관련한 저의 정체성이 저한테는 너무 어려운 숙제처럼 남아 있어요. ‘간접 피해자’로 저를 소개해볼까도 생각했어요. (…) 우리 사회에서 저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에 대해 고민해본 적도 없었을 거예요. 되게 애매하잖아요. 제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이 이에 대해 궁금해하고,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어요.”(297면)
참사 피해자 범위에 대한 이 같은 질문은, 청(소)년 모두에게 던져진 굴레인 ‘가만히 있으라’는 억압적 사회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연결된다. 이 책의 ‘네 번째 이야기’에서 남서현 씨는 한 사람의 청년이자 유가족 형제자매로서 느끼는 이중의 억압에 대해 토로한다.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에서 평등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싫었어요. 참사 초기에는 부모님들도 걱정이 되니까 형제자매에게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한편으론 이해가 되지만 분노가 커지더라고요. 희생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게 문제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게 불편했어요.”(306면)
그렇다면 참사 피해자 청(소)년들은 지난 10년간 자신의 굴레를 벗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을까. 이영수 씨는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자신에게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음을, 참사 이후의 슬픔을 표현할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끊임없이 ‘재난참사에 대해 말하는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있다. “슬픔은 안길 사람을 찾지 못하면 유령처럼 떠돌면서 계속 말을 걸 것이고, 형태를 바꿔가며 찾아올 거예요. 사회적 참사에 응답하는 일은 우리 같이 남겨진, 산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이에요. 저는 재난참사에 관해 설명하는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싶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난 일어난 뒤에 우리가 말하는 것들, 그 담론 자체에 대한 분석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352면)
세월호세대 모두의 건투를 빈다
참사 이후 가족협의회 부모들의 활동, 그에 못지않은 제 또래 형제자매들의 연대를 지켜보면서 그들의 마음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는 마냥 피하고만 싶었는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왜 피해야 하지,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안산을 떠나면 다른 유가족 형제자매 형 누나들도 못 마주칠 것 같고. (…) 부모님들이 끝까지 싸우시는 걸 보고, 저도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피하지 말아보자고.”(153~54면)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어린 피해자들’이 10년이 지나 20대 후반의 청년이 되었다. 그들은 생존자 감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사회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 운동에 함께해왔다. ‘이미 10년이나 지난 일’이라고 말하는 사회에 맞서, 세월호에 대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세월호 운동에서 자기 역할을 찾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 있으라’고만 들어온 이들이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세월호참사 때 제가 친구들을 구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이태원참사 생존자도 옆에 있는 사람을 구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는 걸 스스로 알지만 죄책감이 줄어들지는 않아요. 저도 그 친구도 그날의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니까. 제가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이태원참사 생존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233면)
이 책에는 세월호 운동에 꾸준히 참여해온 20대 시민 두 사람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그들은 10대 때에 세월호참사를 겪고 20대 때에는 이태원참사를 통해 또래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그들은 그 재난들이 남긴 충격과 고통의 깊이만큼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변화하기를 바란다. 단원고 생존자들의 활동인 ‘멘토링 프로젝트’와 아동‧청소년 심리치료 활동인 ‘운디드 힐러’는 이들 세대가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이 사회에 헌신하며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례를 보여준다. 그들 ‘세월호세대’ 모두의 건투를 빈다. 접기
서문 세월호 청(소)년이 마주해온 열 번의 봄
첫 번째 이야기
살아가다 문득 그곳에: 생존자 한수영 이야기
그 생존자가 바로 접니다: 생존자 김도연 이야기
함께여서 지금, 여기까지: 생존자 박상원, 최영진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10년, 우리들 곁에는: 형제자매 김소영, 김소희 이야기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니까: 형제자매 안주영 이야기
죽음을 세는 법: 형제자매 이영은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
내가 잊어버리면 정말 잊힐까 봐: 생존자 이시우 이야기
숨지 않고 나답게: 생존자 장애진 이야기
단 하나의 이유, 우리들: 생존자 김주희, 조수빈 이야기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면: 생존자 박선영 이야기
네 번째 이야기
날마다 한 걸음씩, 그렇게 10년: 형제자매 남서현과 남편 오병훈 이야기
슬픔의 말 걸기: 형제자매 이영수 이야기
다섯 번째 이야기
카메라 뒤에서 나는: 오지수 이야기
우리가 다시 그려낼 시간은: 구파란 이야기
부록
함께 성장하는 시간, 멘토링 프로젝트
상처받은 치유자, 운디드힐러
책소개
세월호참사에서 이태원참사까지, 10년간 마음속에 품어온 이야기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는 이제는 20대 후반 청년의 삶을 살고 있는, 세월호참사 당시의 생존자, 형제자매, 시민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단원고 생존자 9명, 희생자의 형제자매 6명, 20대 시민 연대자 2명, 그리고 단원고 생존자들이 참여한 단체 등을 인터뷰하고 ‘세월호 청(소)년’이 자신 앞의 재난에 마주 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록했다. 독자들은 그들이 ‘어린 피해자’로서 겪은 차별 경험을 읽으며, 어쩌면 우리 사회 전체가 피해자에 대한 낙인과 비난에 동참해왔던 것은 아닌지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청(소)년이 마주해온 열 번의 봄은 어땠는가
저는 그때 팽목에 갔어야 했어요. 이후에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거기서 겪어내야 했어요. 참사가 벌어진 뒤에 지금까지 ‘당시 나는 팽목에 없었지’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살았어요. 팽목에 갔다면 충격이 컸을 거예요. 그로 인해 힘들었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겪지 않아서 남은 부채의식, 죄책감이 있어요. 이 죄책감이 다른 죄책감하고 합쳐져요. 시민들에게만 ‘기억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계속 물었어요. ‘너는 잘 기억하고 있어?’(이 책 338면)
세월호참사를 떠올리는 이들은 2014년 4월 16일 오전 당시 상황을 꽤 또렷이 기억한다. 전 국민적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두가 TV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아파했던 경험은, 그 뒤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에 온 국민이 관심을 갖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다만 이에 비해서, 참사 이후 피해자들에게 찾아온 또 다른 고통을 섬세하게 살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대형 재난참사였던 만큼 생존자와 유가족 형제자매 등이 겪은 후유증이 남달랐음에도 이에 대한 대응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 책의 작가들이 ‘세월호 청(소)년’을 만나고자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참사의 본질은 사건 ‘이후’에 있는지도 모른다. 생존자와 유가족, 형제자매가 처한 ‘어린 피해자’라는 위치는 참사 이후 1년 사이에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헤집어놓았기 때문이다. 십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삶은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기어코 다시 들어야 했다.”(이 책 5면)
단원고 생존학생과 유가족 형제자매 중에서 구술자를 찾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작가들은 어째서 유가족 부모들에 비해 생존자와 형제자매를 만나기 쉽지 않은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생존자와 형제자매는 대다수 ‘당신은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편견에 큰 상처를 받아왔다. 생존자들은 ‘당신은 그래도 살아 있지 않은가’라는 힐난에 시달렸고, 형제자매들은 ‘당신은 자식 잃은 부모가 아니지 않나’라는 핀잔에 당황해했다. 그러다 보니 10년이 지난 지금 그들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고작 “저도 말해도 되나요?”였다. 이 같은 서성임을 지켜보며 작가들은 이것이야말로 ‘세월호 청(소)년’ ‘세월호세대’의 10년을 기록해야 할 이유임을 직감한다.
우리에겐 과연 ‘생존자 감수성’이라는 게 있을까
세월호참사를 겪으며 다양한 경험을 치른 이들의 이야기에는 우리의 “영혼을 포박하는 각별함”(7면)이 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들이닥친 대형 재난, 그리고 그 어수선한 와중에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조용히 삶을 꾸려온 이들만이 갖게 된 어떤 힘이 있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런 각별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말하게끔 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가 생존자와 형제자매에게 이야기를 듣는 방식은 전형적이었다. 이제는 그저 녹음기를 켜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고 자신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서사’를 가다듬을 시간을 주어야 한다. 작가들은 그들의 관점에서 참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 때를 기다려왔다.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그들이 ‘도움 받아야 할 피해자’에서 ‘자기 언어를 지닌 정치적 주체’로 탈바꿈하는 것이고, 작가들의 역할 또한 그들의 전환을 돕는 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총 다섯 개 부로 이뤄진다. 각각 9명의 생존자들, 6명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2명의 세월호세대 청년들의 육성기록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단원고 생존자 편이다. 그들은 4월 16일 참사 당시 구조된 이후 안산의 고려대병원에서 입원했다가 4월 30일부터 6월 24일까지 안산 중소기업연수원에서 지냈다. 그러고 나서 단원고로 복귀하여 학교생활을 이어갔고 그 뒤로 사회에 진출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그때의 생생한 이야기는 그들이 참사 후의 고통을 각자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해왔는가를 보여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 술자리에서 동기들에게 제가 단원고 생존자라고 먼저 말을 꺼냈어요. 4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들이니까 이제는 이야기할 때가 됐다 싶었거든요. 근데, 이미 다 알고 있더라고요. ‘너 알았어?’ ‘너희 진짜 알았어?’ 제가 놀라서 막 물어보고. (웃음) 다들 모르는 척하고 있었던 거예요, 졸업할 때까지. 알고도 티 내지 않았던 거죠. 되게 고마웠어요.”(20면) 생존자 한수영 씨를 배려해온 친구와 동료의 노력은, 이처럼 생존자들이 자기 마음속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이처럼 생존자들의 마음을 여는 데에는 단지 며칠간의 심리 상담이나 마음 치유, 금전적인 보상이 큰 역할을 하지 못함은 분명하다. 한수영 씨의 친구들이 4년간 단 한번도 ‘생존자’ 운운하지 않고 은근히 곁을 지켜준던 것처럼 전 사회적으로 피해자를 대하는 어떤 공동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생존자 김도연 씨는 그것을 가리켜 ‘생존자 감수성’이라고 명명한다. “생존자 감수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 사회에는 그게 없다고 느낀 순간이 진짜 많았어요. 참사 초기에 하루 이틀 심리상담으로 내 상태를 판단하고는 전문가랍시고 임의로 보상금을 지정하는 것도 기괴했어요. 이 보상금이라는 게 뭘까? 국가가 사과한다는 의미인가? (…) 무엇 하나 제대로 규정되지 않은 채 자기들이 임의로 지정한 돈을 주고 나면 우리는 그저 괜찮아져야 하는 건가? 그걸로 사건이 끝났다고 보는 것도, 책임을 다한 게 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죠. 왜 우리가 아파도 되는 정도와 기간을, 애도하는 기간을 사회에서 정하고 그 기한을 넘어서면 유난을 떠는 것처럼 대하는 건지도.”(53면)
유가족 형제자매들 또한 단원고 생존자들과 다를 바 없이, 자신이 유가족인 사실을 함구하며 살아왔다. 이 책의 ‘두 번째 이야기’는 형제자매들이 지난 10년간 자기 정체성을 극히 일부만 드러낸 채 살아온 궤적을 보여준다. “세월호참사 유가족이라는 게 설명하기 참 어려운 위치잖아요.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라는 것도 있으니, 나를 밝혔을 때 상대가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돼요. (…) 이제 남은 가족들 어떡하니?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라지만 참사 나고 한동안은 그런 말을 듣는 것조차도 싫더라고요. 특히 저는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으니까 어른들이나 친구들이 그냥 별 생각 없이 ‘아빠는 무슨 일 하셔?’라고 묻는 게 너무 불편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부모님은 뭐 하세요?’ 이런 거 안 물어봐요.”(117면) 그래도 그들은 조금씩 차근차근 마음을 열어가고 있다. 여전히 이해 안 되는 일투성이지만 그럼에도 형제의 부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아직도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지만, 요즘은 그래도 조금씩 오빠 이야기를 꺼내요. 오늘은 오빠 생각이 나네, 오빠 한번 보고 싶다, 이렇게.”(172~73면)
재난참사에 대해 말하는 ‘더 나은 방법’
‘세 번째 이야기’는 어떤 전환기에 선 생존자들의 삶에 대해 들려준다. 생존자 이시우는 참사 당시 ‘나만 살아 나왔다’라는 죄책감이 새로운 감정으로 변화해가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먼저 떠난 친구들을 떠올릴 때 친구들 몫까지 다해야겠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느꼈어요. 주체 없이 책임감만 있었던 거죠. 지금은 거기에 내가 추가된 느낌?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하는데 내가 들어온 느낌? 이제는 내가 잘 사는 게 친구들 몫을 해내는 것과 같다고 느껴요. 그래야 나중에 친구들이 잘 살았다고 해줄 것 같아요. 어쨌든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거구나, 내 인생이니까.”(212면)
생존자들이 느끼는 책임감은 조금씩 그 범위를 넓혀간다. 그들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참사 생존자들을 보면서 강한 동질감과 연대감을 느낀다. “세월호참사 9주기 때 10.29 이태원참사 생존자와 함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만나보니 저보다 한 살 어린 분이더라고요. 자기만 살아서 나왔다는 생각 때문에 죄책감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233면)
이 책에는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생이었지만 수학여행을 가지 않아 그 뒤로 ‘피해자와 생존자’라는 이분법 아래에서 ‘잔류학생’으로 소외되어버린 청년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참사 현장에 없었다는 이유로, 피해자도 생존자도 아닌 제3의 지대에서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 이의 불안정한 삶의 이야기는 ‘참사 피해자란 누구인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아직도 세월호 관련한 저의 정체성이 저한테는 너무 어려운 숙제처럼 남아 있어요. ‘간접 피해자’로 저를 소개해볼까도 생각했어요. (…) 우리 사회에서 저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에 대해 고민해본 적도 없었을 거예요. 되게 애매하잖아요. 제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이 이에 대해 궁금해하고,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어요.”(297면)
참사 피해자 범위에 대한 이 같은 질문은, 청(소)년 모두에게 던져진 굴레인 ‘가만히 있으라’는 억압적 사회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연결된다. 이 책의 ‘네 번째 이야기’에서 남서현 씨는 한 사람의 청년이자 유가족 형제자매로서 느끼는 이중의 억압에 대해 토로한다.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에서 평등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싫었어요. 참사 초기에는 부모님들도 걱정이 되니까 형제자매에게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한편으론 이해가 되지만 분노가 커지더라고요. 희생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게 문제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게 불편했어요.”(306면)
그렇다면 참사 피해자 청(소)년들은 지난 10년간 자신의 굴레를 벗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을까. 이영수 씨는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자신에게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음을, 참사 이후의 슬픔을 표현할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끊임없이 ‘재난참사에 대해 말하는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있다. “슬픔은 안길 사람을 찾지 못하면 유령처럼 떠돌면서 계속 말을 걸 것이고, 형태를 바꿔가며 찾아올 거예요. 사회적 참사에 응답하는 일은 우리 같이 남겨진, 산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이에요. 저는 재난참사에 관해 설명하는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싶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난 일어난 뒤에 우리가 말하는 것들, 그 담론 자체에 대한 분석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352면)
세월호세대 모두의 건투를 빈다
참사 이후 가족협의회 부모들의 활동, 그에 못지않은 제 또래 형제자매들의 연대를 지켜보면서 그들의 마음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는 마냥 피하고만 싶었는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왜 피해야 하지,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안산을 떠나면 다른 유가족 형제자매 형 누나들도 못 마주칠 것 같고. (…) 부모님들이 끝까지 싸우시는 걸 보고, 저도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피하지 말아보자고.”(153~54면)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어린 피해자들’이 10년이 지나 20대 후반의 청년이 되었다. 그들은 생존자 감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사회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 운동에 함께해왔다. ‘이미 10년이나 지난 일’이라고 말하는 사회에 맞서, 세월호에 대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세월호 운동에서 자기 역할을 찾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 있으라’고만 들어온 이들이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세월호참사 때 제가 친구들을 구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이태원참사 생존자도 옆에 있는 사람을 구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는 걸 스스로 알지만 죄책감이 줄어들지는 않아요. 저도 그 친구도 그날의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니까. 제가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이태원참사 생존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233면)
이 책에는 세월호 운동에 꾸준히 참여해온 20대 시민 두 사람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그들은 10대 때에 세월호참사를 겪고 20대 때에는 이태원참사를 통해 또래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그들은 그 재난들이 남긴 충격과 고통의 깊이만큼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변화하기를 바란다. 단원고 생존자들의 활동인 ‘멘토링 프로젝트’와 아동‧청소년 심리치료 활동인 ‘운디드 힐러’는 이들 세대가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이 사회에 헌신하며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례를 보여준다. 그들 ‘세월호세대’ 모두의 건투를 빈다.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