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10년, 우리는 책임을 물었고 국가는 책임을 묻었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또 왔습니다.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아이들은 어느새 스물여덟 청년이 되었겠지요. 영정 사진 속 아이의 미소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상상조차 어려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잊지 않겠다던 약속은 봄비 젖은 벚꽃처럼 시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 더 뭘 해줘야 하냐는 질책의 목소리는 커졌습니다. 세월호참사 책임자들은 대다수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304명이 죽었는데 대체 무슨 이유로 책임자들에게 죄가 없다고 하는지, 피해자들과 국민은 세월호참사의 정부 책임을 물었는데 왜 검찰과 사법부는 불기소와 무죄판결로 정부의 책임을 묻어 버리는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판결문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재의 조사와 수사, 사법 체계만으로는 대형참사의 정부 책임을 묻기에 너무나 부족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선조위와 사참위 보고서들도 읽었습니다. 두 조사기구는 모두 세월호 침몰 원인에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다수 언론과 정치인들은 세월호참사로 304명이 희생된 이유보다 세월호 선체가 침몰한 원인에 더 집중했습니다. 어렵게 밝혀낸 수많은 조사 성과들은 외면하고 진상규명은 유가족들의 떼쓰기 요구였을 뿐이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속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세월호참사 이후 10년 동안 밝혀진 것들이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우리가 직접 정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00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국가의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공포와 절망 속에서 외쳤을 질문에 우리는 대답해야만 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아침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내 CCTV를 보고 또 보았습니다. 살아있는 아이의 모습을 다시 만났습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온종일 화면 속 아이의 모습을 반복해 보면서 온 식구가 함께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목포 신항에 달려가 세월호 선체 안에서 아이가 걷던 복도와 계단을 걸었습니다. 아이가 앉아 있던 로비, 아이가 누워있던 방, 아이가 드나들던 매점이 있던 자리에서 그날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출입구까지 몇 걸음이면 갈 수 있었을지 수십 번 자세를 바꿔 걸음 수를 세었습니다. 보고서에 기재된 시간대별 세월호의 기울기 각도와 침수 시각을 수없이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밝혀진 사실들을 시간순으로 다시 엮었습니다.
지면의 한계로 인해 지난 10년 동안 밝혀진 수많은 진실과 기록들을 모두 담지 못해 아쉽습니다. 또한 여전히 남겨진 미해결과제들이 많아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온전히 밝히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지난 기록들을 살펴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승객들을 모두 살릴 수 있었던 기회가 너무나 많았고, 살릴 수 있었던 시간도 무척 길었다는 것을. 그 사실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정리하느라 꼬박 3년이 걸렸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함께해 준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초안을 읽고 귀한 의견을 주신 분들, 바쁜 일정에도 선뜻 추천사를 써주신 분들, 시도 때도 없이 던졌던 질문에 언제나 친절히 답해주셨던 분들, 누구보다 지난 10년간 피해자들 곁에서 함께 진상규명을 외쳐 주셨던 수많은 국민들 덕분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준비 중이던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참사로 우리는 159명의 소중한 국민을 잃었습니다. 세월호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처럼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참사의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최후가 윤석열 정부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진실을 감추는 자들이 침몰할 뿐,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 싸움을 계속할 것이고, 마지막 한 조각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봄이 왔습니다. 부디 사랑하는 가족을 빼앗긴 참사 유가족들의 마음에도 곧 봄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이 책을 읽어주시는 여러분의 공감과 연대가 그 봄을 앞당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봄날에 『책임을 묻다』 저자 일동 접기
프롤로그
추천의 말 | 아이들에게 바치는 세월호참사 10주기 보고서
1부 ― 선사와 선원
준형이 이야기
선사, 무조건 많이 싣고 대충 묶어라
안개 속으로 출항
침묵의 눈 CCTV와 차량 블랙박스
승객 안전보다 선사의 이윤
세월호는 열린 배였다
선원, 나만 살면 된다
어어, 안 돼. 안 돼. 안 돼
힐링 펌프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빨리 튀어 올라와!
현재 자리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대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 저기 봐라. 기관부 먼저 탈출한다
2부 ― 해경
건우 이야기
해경, 그걸 내가 왜 해야 해?
최초 신고 “살려주세요”
제주해경
해경본청 사고 인지
목포해경서 상황실 문명일
3009함 목포해양경찰서장 김문홍
진도VTS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 김수현
해경청장 김석균
123정장 김경일
헬기들
청와대와 해경지휘부의 구조방해
123정, 사고 현장에 도착했지만
항공구조사들
해경지휘부가 흘려보낸 골든타임
국가는 외면했다
거짓 기자회견
3부 ― 청와대 PART1
건우 엄마 이야기
청와대 7시간
청와대 국가안보실 최초보고서
승객 구조보다 중요한 대통령 보고
상황인식이 없으시구나
쌓여만 가는 대통령비서실의 상황보고서들
국가안보실은 전원구조가 오보임을 알았다
은밀한 회의
박근혜의 엉뚱한 질문
버려진 약속
4부 ― 청와대 PART2
호성 엄마 이야기
청와대, 진상규명 방해의 컨트롤타워
청와대로 갑시다
청와대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
해경 수사는 막고 유병언 수사는 키워라
감사원의 청와대 감사 결과 ‘사건 불성립’
피해자와 국민의 탓이다
때 그 시절
실시간 보고했다는 거짓말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도 마음대로 고쳤다
애국 세력을 동원해 좌파 세력을 척결하라
5부 ― 기무사와 국정원
건우 아빠 이야기
기무사와 국정원, 피해자를 사찰하고 감시하라
기무사의 피해자 사찰
신분을 숨기고 위장하라
누구를 위한 군인인가?
미수습자 수색을 빨리 종결시켜라
국정원의 활약
6부 ― 세월호 특조위
준형 아빠 이야기
세월호특조위 조사 활동 방해
세월호특별법은 국난을 초래할 것이다
세월호특조위 위원 선출에 관여하라
특조위를 세금도둑으로 몰아라
특조위 설립을 방해하고 감시하라
정부 시행령안을 통과시켜라
대통령 조사를 막아라
경찰청도 나서라
국정원의 특조위 조사방해
보수단체 총동원령
특조위는 강제 종료 특검은 자동 폐기
7부 ― 검찰의 수사와 기소
2014년 검찰 수사 결과
2017~2018년, 촛불집회로 드러난 사실
2019년 세월호참사 전면재수사 요구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
대형 참사의 정부 책임을 수사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검찰
8부 ― 법원의 판단
선사와 선원 재판
해경 재판
청와대 고위관계자들 재판
판결유감
에필로그
10년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세월호참사 피해자 가족들은 방송국 앞 차디찬 길바닥에서 눈비를 맞고 있습니다. 그때는 교통사고라더니 이제는 세월호를 논하지도 말라고 입을 틀어 막습니다. 10년이 지났습니다.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가만히 있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도 부끄러움도 그대로입니다.
이 책은 주로 세월호참사와 관련한 정부의 책임에 대한 글입니다. 글쓴이들이 밝힌 바와 같이 세월호특조위, 선체조사위, 사참위 등의 조사기록과 검찰의 수사기록 그리고 형사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을 분석하여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한 책입니다. 이 책에는 선사와 선원, 해경, 청와대, 기무사와 국정원,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검찰, 법원 등 많은 사람들과 국가 기관들이 나오며, 등장하는 사람들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한 기관과 사람들이 얽히고 설켜서 만든 실뭉치를 꼬이거나 끊어지지 않게 풀어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너무나도 쉽게 그 실뭉치를 풀어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2014년 4월 16일 어떤 참사가 있었고, 그동안 무엇을 밝혀냈는지, 앞으로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시간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였습니다. 이를 위하여 조사위원회들과 검찰 등이 결과물로 내놓은 내용 및 도표와 그림을 적절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준형이와 건우 이야기가 희생자의 당시 상황을 눈에 보이듯 보여주고, 건우 엄마와 호성 엄마, 그리고 건우 아빠와 준형 아빠 이야기가 피해자의 절규와 우리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절절하게 보여줍니다.
이 책은 세월호참사에 관심이 있는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읽기 쉽게 쓰기 위하여 글쓴이들이 얼마나 애를 썼을지 생각하면 무겁게 읽어야만 하는 책입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하여 304명의 소중한 생명과 생존자들, 그리고 피해가족들의 희생을 통해 바로 우리의 인권이 확장되고, 우리 생명의 가치가 높아지고, 대한민국의 안전기준과 피해자에 대한 지원 수준이 달라져 이미 너무도 많은 선물을 받았다는 것을 사람들은 더더욱 잘 모릅니다.
이 책은 세월호참사 피해가족과 그 조력자들인 저자들이 오랫동안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관련 자료를 공동으로 학습하고 토론한 소중한 결과물입니다. 이 책은 한순간 한순간을 기억해내고 때로 상상하며 자료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 삶에서 시작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고, 죽음에서 시작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과정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편찬에 참여한 이들이 그 과정을 하나하나 되돌아보며 얼마나 고통스러웠고, 견디기 어려웠을지 상상하기 힘듭니다.
세월호 피해가족의 글 중 이처럼 한 발짝 더 앞에 다가서서 던지는 글은 흔치 않고, ‘왜 304명이 희생되었으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을 이처럼 찬찬히 정리해 낸 조력자들의 글 또한 쉽게 보기 어렵습니다.
참사 대응의 전 과정에서 다양한 입장과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가 끝이다’라고 감히 선언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밖에서 곁으로 다가갈 수는 있지만 ‘공감한다’고 거짓말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피해가족들의 시간은 다르게 흐릅니다. 피해가족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특별한 상황에 놓인 보통 사람들입니다.
2014년 5월 16일, 촌각을 다투며 피해가족들의 의견과 생각의 조각들을 모으고 모아 정신없이 피해가족의 입장문을 써 내려갔습니다. 저는 그 입장문의 내용이 아직도 여전히 피해가족들의, 그리고 이 책 저자들의 마음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저희는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모든 사람의 안전이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국가에 대한 믿음과 사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참사로 희생된 수많은 소중한 생명들은 오랜 기간 차디찬 바다 밑에서 우리의 치부를 하나씩 하나씩 드러낸 영웅들입니다. 이들을 단순한 희생자, 피해자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영웅으로 만들 것인가는 온전히 살아있는 자들의 몫입니다.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주십시오.”
그러나 여기서 절망하거나 포기할 수는 없지요. 언제나 역사는 절망을 딛고 일어선 소수의 남은 무리로 인하여 진보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면 세월호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야말로 소수의 남은 무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오셨습니다. 자식을 잃은 고통 속에서도 오직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더 나아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업까지 포기한 채 10년 세월을 헌신해 오셨습니다.
이 책은 이들의 헌신 덕분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특히 몇몇 유가족들은 수천 장의 판결문과 사참위 보고서들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어 이 책의 방향과 골격을 잡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 그날 참사의 원인과 과정, 이후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에 관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무엇인지를 바로 깨닫게 해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지난 10년 동안 그들이 부여안고 싸워온 투쟁의 보고서요,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 곧 세월호참사 10주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매년 그래 왔던 것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별이 된 304명의 영혼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에 성심을 다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1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곳곳에서 슬픔과 고통을 견디며 살아온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일상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욱 헌신하겠습니다.
『책임을 묻다』는 꼭 필요한 때에 나왔습니다. 세월호참사 10주기가 되면서 지난 성과와 한계에 대해 질문을 받습니다. 10년 동안 피해 가족들과 시민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쳐왔는데 어떤 성과가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이에 대해 416연대를 비롯해 관련 단체에서도 소책자로 만들었지만, 소책자라는 분량의 한계도 있습니다. 10주기를 앞두고 성과와 부족한 점을 집중해서 다루는 자료집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필요한 때에 『책임을 묻다』가 발간된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책임을 묻다』가 한 줄기 빛이 되고 희망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사참위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해 송구하다.’고 사과하면서 활동을 마쳤습니다. 조사기구는 피해가족들과 시민들의 간절한 염원과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가족과 시민들의 노력이 그렇게 미완의 결론으로 끝이 났으니 참담했습니다. 그러나 사참위가 남긴 방대한 자료들을 통해 미완의 결론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동의할 수 없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최종 결론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앞으로 『책임을 묻다』가 민간 연구의 좋은 도약대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책임을 묻다』는 공적 조사기구 이후 진상규명 작업의 좋은 사례가 될 것입니다. 사참위 이후에는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진상규명을 하게 될 것입니다. 민간 연구자들은 서로 협력하여 소기의 성과를 일구어 내야 합니다. 그 성과에 기초해서 공적 조사기구의 추가 조사 작업을 다시 시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재난 참사에 관한 연구로 이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민간 연구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다양한 입장도 중요하지만 공동 협력이 더욱 절실합니다. 민간 연구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진상규명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416안전사회연구소 사무처장
· 전 416가족협의회 사무처장
· 전 416가족협의회 회원조직부서 팀장
· 416안전사회연구소 소장
· 전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 416가족협의회 추모분과장
· 전 『416단원고 약전』 발간운영위원
· 전 416의 목소리(팟) 작가 겸 진행자
· 법률사무소 법과치유
· 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사무처장
· 법무법인(유한) 정진
· 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책소개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또 왔습니다.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아이들은 어느새 스물여덟 청년이 되었겠지요. 영정 사진 속 아이의 미소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상상조차 어려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잊지 않겠다던 약속은 봄비 젖은 벚꽃처럼 시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 더 뭘 해줘야 하냐는 질책의 목소리는 커졌습니다. 세월호참사 책임자들은 대다수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304명이 죽었는데 대체 무슨 이유로 책임자들에게 죄가 없다고 하는지, 피해자들과 국민은 세월호참사의 정부 책임을 물었는데 왜 검찰과 사법부는 불기소와 무죄판결로 정부의 책임을 묻어 버리는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판결문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재의 조사와 수사, 사법 체계만으로는 대형참사의 정부 책임을 묻기에 너무나 부족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선조위와 사참위 보고서들도 읽었습니다. 두 조사기구는 모두 세월호 침몰 원인에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다수 언론과 정치인들은 세월호참사로 304명이 희생된 이유보다 세월호 선체가 침몰한 원인에 더 집중했습니다. 어렵게 밝혀낸 수많은 조사 성과들은 외면하고 진상규명은 유가족들의 떼쓰기 요구였을 뿐이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속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세월호참사 이후 10년 동안 밝혀진 것들이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우리가 직접 정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00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국가의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공포와 절망 속에서 외쳤을 질문에 우리는 대답해야만 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아침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내 CCTV를 보고 또 보았습니다. 살아있는 아이의 모습을 다시 만났습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온종일 화면 속 아이의 모습을 반복해 보면서 온 식구가 함께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목포 신항에 달려가 세월호 선체 안에서 아이가 걷던 복도와 계단을 걸었습니다. 아이가 앉아 있던 로비, 아이가 누워있던 방, 아이가 드나들던 매점이 있던 자리에서 그날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출입구까지 몇 걸음이면 갈 수 있었을지 수십 번 자세를 바꿔 걸음 수를 세었습니다. 보고서에 기재된 시간대별 세월호의 기울기 각도와 침수 시각을 수없이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밝혀진 사실들을 시간순으로 다시 엮었습니다.
지면의 한계로 인해 지난 10년 동안 밝혀진 수많은 진실과 기록들을 모두 담지 못해 아쉽습니다. 또한 여전히 남겨진 미해결과제들이 많아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온전히 밝히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지난 기록들을 살펴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승객들을 모두 살릴 수 있었던 기회가 너무나 많았고, 살릴 수 있었던 시간도 무척 길었다는 것을. 그 사실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정리하느라 꼬박 3년이 걸렸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함께해 준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초안을 읽고 귀한 의견을 주신 분들, 바쁜 일정에도 선뜻 추천사를 써주신 분들, 시도 때도 없이 던졌던 질문에 언제나 친절히 답해주셨던 분들, 누구보다 지난 10년간 피해자들 곁에서 함께 진상규명을 외쳐 주셨던 수많은 국민들 덕분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준비 중이던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참사로 우리는 159명의 소중한 국민을 잃었습니다. 세월호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처럼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참사의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최후가 윤석열 정부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진실을 감추는 자들이 침몰할 뿐,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 싸움을 계속할 것이고, 마지막 한 조각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봄이 왔습니다. 부디 사랑하는 가족을 빼앗긴 참사 유가족들의 마음에도 곧 봄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이 책을 읽어주시는 여러분의 공감과 연대가 그 봄을 앞당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봄날에 『책임을 묻다』 저자 일동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