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10주기 청년활동가 기억순례
“세월호앞에서 우리다시만나”
- 일시 : 2024. 10. 4. (금) ~ 10. 5.(토)
- 장소 : 진도 팽목 / 숙박 : 세월호 팽목기억관
- 참가자 : 시민사회 청년활동가 20여 명 (9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 한국YWCA연합회,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녹색교통운동 등)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막 지난 가을, 팽목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활동 역사 속에서 세월호 참사가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청년 활동가들입니다. 청년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그때의 약속을 다시 다짐하기 위해 팽목항으로 떠났습니다.
이른 새벽에 모여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려 처음 도착한 곳은 목포 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앞이었습니다. (사)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정성욱 부서장(단원고 2-7 정동수 아버님)의 안내에 따라 안전 사항을 안내받고 세월호 앞에 섰습니다.
아직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다섯 명, 박영인, 남현철, 양승진, 권혁규, 권재근 님의 이름을 불러보고, 그분들을 포함한 304분의 희생자를 기리며 묵념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드디어 세월호 앞에 섰습니다.
아직 가족으로 돌아오지 못한 다섯 분을 포함하여 별이 된 304명의 희생자를 무겁게 기리는 마음으로 묵념하겠습니다.”
동수 아버님의 가이드에 따라 세월호 선체를 둘러보았습니다. 각 선체 부위를 보며 몰랐던 정보를 듣거나 당시 조사 과정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침몰 시험에 사용했던 세월호 모형도 둘러보았습니다.
세월호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헤지고 삭은 세월호의 표면을 보며 10년의 시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리조트처럼 거대한 세월호를 보며,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의 수습과 진실 인양을 향한 수많은 국민의 염원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선체를 둘러본 후 회의실에서 동수 아버님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동수 아버님은 10년 전 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후일 동수 앞에 떳떳하기 위해 맨땅에 헤딩하듯 인양법을 공부하고 선체를 공부해왔다고 말했습니다. 세월호에 대해 수없이 설명하고 알려왔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청년 활동가들이 잊지 않고 함께해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제대로 알려질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한 활동가는 세월호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지만, 마치 오랫동안 봐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실제로 봤을 때 여전히 아프다고 고백했습니다. 선체를 직접 보는 경험이 주는 것을 오롯이 남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선체가 거치된 현장에서 발걸음을 뗄 때까지, 많은 방문객이 가족 단위로, 팀 단위로 선체를 방문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안전상의 이유로 세월호 내부 관람이 금지되어 있지만, 빠르게 세월호 선체 거치와 안전교육관 설립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 많은 사람이 제대로 세월호 참사를 알고 교훈을 기억해야 할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선체를 둘러본 후, 진도 기억의 숲으로 향했습니다. 박현민 4.16연대 활동가의 설명을 따라 기억의 숲을 걸었습니다. 기억의 숲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그 사진을 찍은 이유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한 활동가는 어쩌다 보니 행렬의 맨 앞을 걷게 되었는데, 어떻게 가야 할지 방황하던 차에 나무에 걸린 노란 리본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었다며, 마치 노란 리본이 우리에게 갈 길을 알려주는 것처럼 앞으로도 세월호가 남긴 교훈을 이정표 삼아 활동을 이어나가야겠다고 사진을 찍은 이유를 남겨주셨습니다.
식사 후 팽목항을 걸었습니다. 마침 맑은 하늘이 노을로 붉고 진하게 물들고 있을 때였습니다.
팽목항에서 세월호 선체를 볼 수 있던 위치에 서서, 당시 가족들이 느꼈을 애타는 감정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팽목 기억관에서 참여형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참여형 프로그램 <나의 노란 활동가 나무>는 청년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 모두의 시작점에 세월호가 남긴 질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우리가 활동가가 되는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가 남긴 질문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각자의 활동 역사를 엮어서 이야기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서로 관심 의제가 다르고 활동 영역도 다른 다양한 활동가의 삶을 간접적으로 알아갈 수 있었고, 세월호를 중심으로 소통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세월호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새길 수 있었습니다.
참여형 프로그램을 마친 후, 4.16연대 류현아 활동가의 <어느 세월호 활동가의 이야기>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가족과 시민의 첫 만남,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운동, 촛불 혁명 등 세월호 참사 운동의 흐름을 함께 되돌아보며 민주주의와 안전권이라는 가치를 확인하고, 재난 참사 피해자를 향한 혐오와 모독의 양상을 들여다보며 다양한 의제와의 연결고리를 찾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애도라는 강력한 감정과 애도 공동체라는 실천을 바탕으로 서로 연결되는 교차점으로서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배려가 넘치는 활동가 답게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높은 집중력과 호응으로 들어주셨습니다.
빽빽한 일정을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다음 날 활동가들은 목포 근현대사 골목으로 모였습니다. 목포는 일제강점기 당시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의 건물이 현재 근현대사박물관으로 탈바꿈해 소중한 역사의 교훈과 가치를 남기고 있었습니다. 목포 시민이 일궈온 항일 운동과 불의에 저항해온 민주주의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공적으로 남겨진 소중한 역사와 가치가 주는 뜨거운 감정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어색했던 청년 활동가들은 헤어질 때 버스에서 서로의 이별을 아쉬워했습니다. 각자의 진심 어린 참여가 청년 기억 순례를 우리 모두에게 귀중한 시간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함께해 주신 청년 활동가분들께 감사드리며, 다른 자리에서 또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세월호참사 10주기 청년활동가 기억순례
“세월호앞에서 우리다시만나”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막 지난 가을, 팽목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활동 역사 속에서 세월호 참사가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청년 활동가들입니다. 청년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그때의 약속을 다시 다짐하기 위해 팽목항으로 떠났습니다.
이른 새벽에 모여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려 처음 도착한 곳은 목포 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앞이었습니다. (사)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정성욱 부서장(단원고 2-7 정동수 아버님)의 안내에 따라 안전 사항을 안내받고 세월호 앞에 섰습니다.
아직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다섯 명, 박영인, 남현철, 양승진, 권혁규, 권재근 님의 이름을 불러보고, 그분들을 포함한 304분의 희생자를 기리며 묵념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드디어 세월호 앞에 섰습니다.
아직 가족으로 돌아오지 못한 다섯 분을 포함하여 별이 된 304명의 희생자를 무겁게 기리는 마음으로 묵념하겠습니다.”
동수 아버님의 가이드에 따라 세월호 선체를 둘러보았습니다. 각 선체 부위를 보며 몰랐던 정보를 듣거나 당시 조사 과정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침몰 시험에 사용했던 세월호 모형도 둘러보았습니다.
세월호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헤지고 삭은 세월호의 표면을 보며 10년의 시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리조트처럼 거대한 세월호를 보며,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의 수습과 진실 인양을 향한 수많은 국민의 염원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선체를 둘러본 후 회의실에서 동수 아버님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동수 아버님은 10년 전 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후일 동수 앞에 떳떳하기 위해 맨땅에 헤딩하듯 인양법을 공부하고 선체를 공부해왔다고 말했습니다. 세월호에 대해 수없이 설명하고 알려왔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청년 활동가들이 잊지 않고 함께해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제대로 알려질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한 활동가는 세월호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지만, 마치 오랫동안 봐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실제로 봤을 때 여전히 아프다고 고백했습니다. 선체를 직접 보는 경험이 주는 것을 오롯이 남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선체가 거치된 현장에서 발걸음을 뗄 때까지, 많은 방문객이 가족 단위로, 팀 단위로 선체를 방문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안전상의 이유로 세월호 내부 관람이 금지되어 있지만, 빠르게 세월호 선체 거치와 안전교육관 설립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 많은 사람이 제대로 세월호 참사를 알고 교훈을 기억해야 할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선체를 둘러본 후, 진도 기억의 숲으로 향했습니다. 박현민 4.16연대 활동가의 설명을 따라 기억의 숲을 걸었습니다. 기억의 숲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그 사진을 찍은 이유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한 활동가는 어쩌다 보니 행렬의 맨 앞을 걷게 되었는데, 어떻게 가야 할지 방황하던 차에 나무에 걸린 노란 리본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었다며, 마치 노란 리본이 우리에게 갈 길을 알려주는 것처럼 앞으로도 세월호가 남긴 교훈을 이정표 삼아 활동을 이어나가야겠다고 사진을 찍은 이유를 남겨주셨습니다.
식사 후 팽목항을 걸었습니다. 마침 맑은 하늘이 노을로 붉고 진하게 물들고 있을 때였습니다.
팽목항에서 세월호 선체를 볼 수 있던 위치에 서서, 당시 가족들이 느꼈을 애타는 감정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팽목 기억관에서 참여형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참여형 프로그램 <나의 노란 활동가 나무>는 청년 활동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 모두의 시작점에 세월호가 남긴 질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우리가 활동가가 되는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가 남긴 질문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각자의 활동 역사를 엮어서 이야기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서로 관심 의제가 다르고 활동 영역도 다른 다양한 활동가의 삶을 간접적으로 알아갈 수 있었고, 세월호를 중심으로 소통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세월호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새길 수 있었습니다.
참여형 프로그램을 마친 후, 4.16연대 류현아 활동가의 <어느 세월호 활동가의 이야기>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가족과 시민의 첫 만남,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운동, 촛불 혁명 등 세월호 참사 운동의 흐름을 함께 되돌아보며 민주주의와 안전권이라는 가치를 확인하고, 재난 참사 피해자를 향한 혐오와 모독의 양상을 들여다보며 다양한 의제와의 연결고리를 찾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애도라는 강력한 감정과 애도 공동체라는 실천을 바탕으로 서로 연결되는 교차점으로서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배려가 넘치는 활동가 답게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높은 집중력과 호응으로 들어주셨습니다.
빽빽한 일정을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다음 날 활동가들은 목포 근현대사 골목으로 모였습니다. 목포는 일제강점기 당시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의 건물이 현재 근현대사박물관으로 탈바꿈해 소중한 역사의 교훈과 가치를 남기고 있었습니다. 목포 시민이 일궈온 항일 운동과 불의에 저항해온 민주주의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공적으로 남겨진 소중한 역사와 가치가 주는 뜨거운 감정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어색했던 청년 활동가들은 헤어질 때 버스에서 서로의 이별을 아쉬워했습니다. 각자의 진심 어린 참여가 청년 기억 순례를 우리 모두에게 귀중한 시간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함께해 주신 청년 활동가분들께 감사드리며, 다른 자리에서 또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