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고]
2025 4.16연대 책모임 세계관 시즌 1 후기
올해 초, 매주 토요일 응원봉과 깃발, 피켓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를 지키느라 분주했던 한겨울을 기억하시나요?
불법 계엄이 선포되었던 12월 4일 새벽, 한 청년이 트위터에 남긴 글이 있었습니다.
“얘들아, 우리는 가만히 있으란 말을 듣지 않기로 결심한 세대야.” (페미당당 심미섭)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던 이 말은, 청년들의 실천과 행동의 이유가 ‘세월호’의 교훈에서 비롯되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주말마다 광장을 지키느라 쉴 틈 없던 그 겨울, 세월호를 기억하는 청년들은 주말뿐만 아니라 매주 목요일 4.16연대에 모여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을 지금의 세상과 연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이 말해주는 민주주의와 광장에서 직접 만난 민주주의를 비교하며 “우린 지금 현장학습 중이다!”라고 농담을 던지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청년 책모임은 3월 초부터 5월 초까지, <세월호와 민주주의>라는 큰 주제 아래 두 권의 책을 읽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첫 번째 책: 아무튼 데모
첫 번째로 읽은 책은 정보라 작가의 <아무튼, 데모>였습니다.
책 속에는 4.16세월호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 부스에서의 경험, 그리고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분들의 오체투지 현장 기록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작가는 데모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데모가 사람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세상을 바꿔가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첫 번째 책모임에는 한량님, 호범님, 임코님, 정은님, 승호님, 성훈님과 4.16연대 활동가 현아, 가라연, 혜원이 함께했습니다. 책을 읽은 뒤 나누었던 소중한 이야기들을 전해드립니다.
이야기 나눔
임코님은 책에 나온 10.29 이태원참사 관련 연대 장면을 짚으며, 그 자리에 함께 행진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날이 일상에 치이다가 다시 사회 문제를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특히 “데모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사람은 세상을 바꾼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며, 생업이 아님에도 사회정의를 위해 나서는 사람들을 보며 치사량만큼의 낭만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닐까” 하는 경외심도 전해주셨습니다.
정보라 작가님은 책에서 ‘세월호’와 ‘전장연’의 활동을 많이 언급합니다. 호범님도 세월호와 전장연 출근길 시위를 삶에서 사회를 달리 바라보게 된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았습니다. 세월호 서명 부스에서 꾸준히 연대로 함께한 전장연의 모습에 감동했고, 전장연 시위 현장에 가서 연대에 다시 연대로 응답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우리의 연대 의식이 어떻게 확장되어왔는지 함께 되짚었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레 민주주의를 광장에서 ‘현장학습’하던 소감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참가자들은 국회 앞에 사람들이 가득 모인 것을 보고,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성훈님은 안전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차에, 모르는 누군가가 다가와 위험을 막아주고 길을 안내해주었던 기억을 회상하며 ‘연대’를 몸으로 체험한 순간을 들려주셨습니다.
반면 정은님은 책 속에서 다룬 시위 의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실에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또 성훈님은 “대부분의 집회나 데모는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열리지만, 혐오 집회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나의 데모일기
책에 대한 소감을 나눈 뒤에는 작은 프로그램 <나의 데모일기>를 진행했습니다. 각자의 첫 데모나 인상 깊은 민주주의 현장을 그림일기로 남겨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임코님은 3월 3일 동덕여대 집회 현장을 그리며 “깃발은 휘어질지언정 꺾이지 않는다”는 명언을 다시금 전해주셨습니다.
가라연님은 춤추는 졸라맨을 그려 넣으며, K-pop이 울려 퍼지던 광장에서 함께 춤추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데모는 즐겁다”라는 또 하나의 명언도 남겨주셨죠.
정은님은 역사적인 남태령 현장을 그렸습니다. 그날, 정은님은 광화문 집회가 끝나고 집에 가려다 전철을 잘못 타 동작까지 와버려 운명을 받아들이고 남태령에 발을 디뎠다고 합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대치가 밤샘으로 이어졌지만, 다섯 개로 시작한 핫팩이 500개가 되는 기적을 마주하면서, 몸소 연대의 기적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한량님은 2016년 광화문 한복판, 차도 중앙선 위를 처음 밟던 순간을 그렸습니다. 평소에는 밟기 어려운 차도 위를, 다수의 시민들이 걷고 구르며 함께 목소리냈던 그 첫 순간을 ‘덕통의 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호범님은 장례식장을 그렸습니다. 장애인권운동 속에서 함께했던 활동가들을 떠올리며, 연대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살았던 그의 존재가 빛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기억하고 살아남아 투쟁하겠다고 굳게 약속하는 것.”
수철 활동가의 책모임 일지 더보기

📚 두 번째 책: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
두 번째로 함께 읽은 책은 최태현 작가의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였습니다. 이 책은 민주주의 자체가 가진 역설을 드러냅니다. 크게 제도로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파트와,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본질, 즉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파트로 구분됩니다.
책의 구성과 주요 내용
1장에서 5장까지는 민주주의의 작동원리인 ‘대의제’에서의 ‘대표’ 개념을 둘러싼 역설, ‘리더’의 존재가 발생시키는 역설을 살펴봅니다. 또한, 정책 의제가 설정되고 해결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취사 선택되거나 시민을 의심하고 예외를 발생시키는 등, ‘관료제’와 ‘정부’, ‘공무원’의 행정 과정이 지닌 역설을 비판합니다.
마지막 6장, 7장, 8장에서는 마음과 공공성, 작은 공을 다룹니다. 권력이 작동하는 조직 안에서 우리의 마음이 언제 부패할 수 있는지, 두려움과 사랑, 그리고 슬픔이라는 마음을 들여다보며, 공적 행위로서 위로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세균과 싸우는 백혈구같이, 민주주의를 회복시켜나가는 삶의 단위로서 작은 공들을 제안합니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수많은 역설을 인정하며, “완벽한 대안이란 없다”는 결론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설을 인정하고 성찰을 도모하는 데에서 절망으로서의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청년 책모임 세계관은 책을 1~3장, 4~5장, 6~7장, 8장으로 나누어 네 번의 모임에 걸쳐 깊게 이야기 나눈 뒤, 다섯 번째 모임에서 최태현 작가님을 모시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표와 리더
책을 읽는 동안 광장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어, ‘대표’와 ‘리더’라는 주제에 대해 더욱 깊이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배운 참된 민주주의의 모습에는 ‘철인왕’은 없었습니다. 모든 해결책을 갖고 있다며 등장하는 이들은 거짓말쟁이라고 작가는 지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런 이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철인왕’을 바라고 위임하는 관성이 이미 있다는 역설을 지적합니다. 철인왕이 나타나는 순간 그는 ‘권력’을 좇으며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정치의 팬덤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불신과 맹신 사이에 우리는 대표와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을까 고민을 이어 나갔습니다. 어려움을 해결해줄 것이라 기대되고 모든 것을 맡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자에게 그의 수행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동시에 팬덤화시키지 않고, 부패하지 않게 감시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갔습니다. 또는 그 일을 국가가 전담하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책에서 지적했듯이, 사회기술의 집약체로서 국가 관료제 역시 강력한, 때로는 유일한 해법이면서 문제 그 자체임을 확인했습니다.
관료제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사고는 책의 흐름에 따라 관료제에 닿았습니다. 국가 관료제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화, 숙의, 합의와는 거리가 있는 제도인,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는 예외주의를 낳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그 구체적인 예로서, ‘시민을 지키기 위한 국가’가 어떻게 ‘시민의 권리를 박탈하는지’에 대해 세월호 등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겪는 상황을 떠올렸습니다. 세월호참사 피해자가 공무원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을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그래서 정확히 원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이었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공무원이 이렇게 차갑게 말을 꺼내지 않게 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하는 한편, 우리도 우리를 관료적으로 기능하게 하는 곳에서 같은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죽지 않도록
우리는 공적 공간에 있을 때 우리 모두를 비인간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방법을 질문했습니다. 관료제 속에서는 자신의 행위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에 대한 책임은 외부적으로 돌리기 쉽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최태현 작가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인용해 권위에 대한 무비판적 순종이 죽임을 정당화하도록 무심함을 알게 모르게 조장한다고 말합니다.
작가는 권력과 마음의 부패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하며, 헤겔의 ‘노예’ 비유를 듭니다. 여기서 노예란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하고 외부의 기준과 규범에 복종되어있는 상태이며,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공무원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작가는 공무원 역시 인간이며 시민이라는 점에서, 관료제라는 제도의 몰인격적 기계 부품으로 전락시킬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관료제에 대한 기능적 기대를 충족시키면서도 동시에 조직 안의 개인을 비인간화하지 않을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면 우리는 세월호참사 이후 해체된 기무사의 후신 ‘방첩사령부’에서 법무장교들이 계엄의 부당성을 외치거나, 출동한 군인들이 소극적으로 대처한 사례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외부의 규범에 종속되지 않고, 나 스스로의 율법, 윤리적 자율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세월호가 남긴 교훈 속에, 혹시 인간에 대한 존엄과 마음을 지키고 싶은 마음,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 대한 윤리적 자율성이 있었을까요?
민주주의의 마음과 공존
작가는 답 없는 질문 끝에 두 가지 방향성을 제안합니다. 바로 ‘민주주의의 마음’, 그리고 작은 공입니다.
작가는 ‘너그러움’이라는 마음에 대해 다루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회를 비판합니다.
관련해서 우리는 장애 당사자로서의 장애등급제에 대한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더 나아가 한부모가정 서류나 난민 증명에 대한 이야기까지 확장되었고, 실제 주변에 고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음을 떠올렸습니다.
특히 ‘시끄러운 사회적 약자’가 시혜적 태도를 비판하고 목소리를 내는 주체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 전장연 시위나, 재난참사 피해자, 여성들의 사회운동 등을 이야기하며, 진정성을 의심하기보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반을 모두가 함께 누리기 위해 더 너그러운 마음과 신뢰가 필요함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더 나아가 더 큰 재난과 죽음들이 몰려올 때 작가는, ‘우리가 이미 깊고 긴 슬픔을 느끼는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되짚으며, ‘공적인 슬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공적 행위 - 위로’를 말합니다.
이어 작가는 그 공적 행위를 위해 ‘시민적 상상력’을 제안합니다. 특히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한 상상력을 제안하는데요.
우리는 순환된 선의를 경험했던 지난 광장에서의 경험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남태령에서 노동자, 농민, 장애인, 여성, 퀴어가 너나 할 것 없이 연결되었던 연대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또 무안 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났을 때 무안에 있느라 서울에 못 갔다는, 혹은 서울에 있어서 무안에 못 갔다는 따뜻한 말들이 오고 갔던 실제 누군가들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지난 광장에서의 경험으로 누군가가 함께 하고 있다라는 한 축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인이 있을까 이야기하며, ‘인생을 경험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었다’는 문형배 재판관의 옛날 인터뷰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의 대화를 넘어, 더 나아가 우리는 극우와의 대화도 상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시 정희진 여성학자의 ‘공존’이라는 칼럼이 화두였습니다. 윤석열 구속을 외치기 위해 한남동에 가던 길에 탄핵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과 마주쳐 긴장감을 느꼈던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책의 끝에 다다르니, 이미 민주주의 자체에 갈등과 역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공존’이야말로, 스스로 극도의 인내와 긴장을 동반하는 신경증적 상황의 지속임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정희진은 “극우의 반대말은 공존”이라는 말로,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고 근절의 대상으로 삼는 방식이야말로 극우 그 자체이며, 역설적이지만 극우적 사고의 반대로서, 극우와의 공존이라는 갈등 상황을 견디는 힘이야말로 평화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책과 함께 관통하는 맥락이었습니다.
작은 공
작가는 마지막 장에서 작은 공을 많이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여기서 작은 공의 공은, 공공성의 공입니다. ‘작은 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다양한 결사체로서 ‘작은 공’은 실제 공간에 부피를 차지하고, 동시에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의 모임입니다. 정치적 삶의 출발점으로서 작은 공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특히 한 분은 탄핵 집회 동안 자원봉사단 활동을 하며 시민적 상상력과 너그러움을 전파할 의지가 있는, 나의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기대가 충족되고, 동시에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느꼈다며, 작은 공에 대한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모여 책을 읽는 우리도 ‘작은 공’이 아닐까? 이 안에서 여러 모순들과 역설이 있겠지만, 이 갈등과 역설을 안고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해나가는 것’을 결심하며 책모임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작가와의 만남
마지막 모임은 저자이신 최태현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최태현 작가님은 현재 4.16합창단에서 활동 중이신데요. 10주기가 되어서야 참여하시게 된 경험을 나눠주시며, ‘520번의 금요일처럼 어딘가 자리를 지키는 자들을 통해, 521번째 사람이 되었다’고 본인을 소개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솔직하게 이 책을 읽으며 “그래서 대안이 무엇입니까 선생님!”하고 여러 번 외치고 싶었지만,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는 것을, 역설과 모순, 절망과 희망을 순환하도록 우리를 대화로 이끄는 책의 흐름에 따라, 우리도 대안 없이 즐겁고 통찰력을 얻어가는 대화를 나누었음을 전했습니다.
작가님은 찬찬히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셨는지 전해주셨습니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누군가 악의 세력이 있어 이상적인 민주주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제도라도 역설을 지니고 있기에, 작가님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절망하는 순간,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장에서 증명해 보였듯이 민주주의의 위기가 왔을 때, 백혈구 같은 존재들, 미생물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지탱하듯이 ‘작은 공들이 민주주의를 지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작은 공들에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말을 전해주셨습니다.
각자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도 작가님께 전할 수 있었는데요. 한 분은 이번 시국을 통해, 같은 사회를 살고 있는데도 보이지 않던 것이 너무 많았다며, 수많은 투쟁 현장들을 직접 겪지 못하고 유가족들이 앞에서 모든 것을 겪은 뒤 변화된 것을 문자로만 만나거나, 제도적으로 만나게 된 점에 대해 자책을 느끼고 있었는데, ‘네가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라고 말씀하신 것이 위로가 되었고, ‘역설과 맹점에 대해 나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에 가닿을 수 있게 되어 좋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수동으로 굴러간다’는 말처럼, 함께 개입할 수 있는 틈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어, ‘사랑’이라는 감정에 기초해서 민주주의를 설명해주신 것에 공감이 많이 갔다며, ‘사랑한다’는 감정적 동기가 사회적 동기가 되어 소심한 내향적 사람들도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 느슨한 연대, 혹은 작은 공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 공감도 많이 되고 위로도 되었다는 말도 이어졌습니다.
또한 작가님이 던져주신 “공적 공간에 있을 때 우리 모두를 비인간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방법”에 대한 질문을 나누며, 우리 안의 윤리적 자율성,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지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직업을 가진 시민으로서, 호주머니 속 송곳처럼 뾰족하게 사는 것에 대해 조직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두려움이 많다는 솔직한 마음이 고백되었습니다.
이에 작가님은 가장 오래 살아남는 조직은 다양성이 보장되는 조직이라며 실패할 정도가 아니라면 이야기해도 된다, 자신 있게 말하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특히 ‘조직에서 권력을 탐하지 말라’는 겸손 어구와 다르게, 역설적으로 우리 모두가 겸손의 자세를 취할 때 조직에서 권력을 장악하는 자는 그 자리만을 보는 사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광화문-세월호-이태원-응원봉 광장을 경험한 세대의 정치적 자산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에 토양을 믿고 보다 주도적인 위치를 점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 마무리하며
세월호와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광장에서 현장학습하며 읽은 책 <아무튼 데모>와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는 우리가 겪는 절망이 역설적이게도 희망적인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으로서 우리가 이렇게 책을 읽는 모임이 ‘작은 공’으로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자리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매주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슈들과 솔직한 고민들을 나눌 수 있었던 귀한 시간들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4.16연대 청년 책모임은 지속됩니다!
[활동보고]
2025 4.16연대 책모임 세계관 시즌 1 후기
올해 초, 매주 토요일 응원봉과 깃발, 피켓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를 지키느라 분주했던 한겨울을 기억하시나요?
불법 계엄이 선포되었던 12월 4일 새벽, 한 청년이 트위터에 남긴 글이 있었습니다.
“얘들아, 우리는 가만히 있으란 말을 듣지 않기로 결심한 세대야.” (페미당당 심미섭)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던 이 말은, 청년들의 실천과 행동의 이유가 ‘세월호’의 교훈에서 비롯되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주말마다 광장을 지키느라 쉴 틈 없던 그 겨울, 세월호를 기억하는 청년들은 주말뿐만 아니라 매주 목요일 4.16연대에 모여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을 지금의 세상과 연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이 말해주는 민주주의와 광장에서 직접 만난 민주주의를 비교하며 “우린 지금 현장학습 중이다!”라고 농담을 던지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청년 책모임은 3월 초부터 5월 초까지, <세월호와 민주주의>라는 큰 주제 아래 두 권의 책을 읽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첫 번째 책: 아무튼 데모
첫 번째로 읽은 책은 정보라 작가의 <아무튼, 데모>였습니다.
책 속에는 4.16세월호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 부스에서의 경험, 그리고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분들의 오체투지 현장 기록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작가는 데모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데모가 사람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세상을 바꿔가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첫 번째 책모임에는 한량님, 호범님, 임코님, 정은님, 승호님, 성훈님과 4.16연대 활동가 현아, 가라연, 혜원이 함께했습니다. 책을 읽은 뒤 나누었던 소중한 이야기들을 전해드립니다.
이야기 나눔
임코님은 책에 나온 10.29 이태원참사 관련 연대 장면을 짚으며, 그 자리에 함께 행진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날이 일상에 치이다가 다시 사회 문제를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특히 “데모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사람은 세상을 바꾼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며, 생업이 아님에도 사회정의를 위해 나서는 사람들을 보며 치사량만큼의 낭만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닐까” 하는 경외심도 전해주셨습니다.
정보라 작가님은 책에서 ‘세월호’와 ‘전장연’의 활동을 많이 언급합니다. 호범님도 세월호와 전장연 출근길 시위를 삶에서 사회를 달리 바라보게 된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았습니다. 세월호 서명 부스에서 꾸준히 연대로 함께한 전장연의 모습에 감동했고, 전장연 시위 현장에 가서 연대에 다시 연대로 응답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우리의 연대 의식이 어떻게 확장되어왔는지 함께 되짚었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레 민주주의를 광장에서 ‘현장학습’하던 소감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참가자들은 국회 앞에 사람들이 가득 모인 것을 보고,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성훈님은 안전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차에, 모르는 누군가가 다가와 위험을 막아주고 길을 안내해주었던 기억을 회상하며 ‘연대’를 몸으로 체험한 순간을 들려주셨습니다.
반면 정은님은 책 속에서 다룬 시위 의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실에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또 성훈님은 “대부분의 집회나 데모는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열리지만, 혐오 집회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나의 데모일기
책에 대한 소감을 나눈 뒤에는 작은 프로그램 <나의 데모일기>를 진행했습니다. 각자의 첫 데모나 인상 깊은 민주주의 현장을 그림일기로 남겨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임코님은 3월 3일 동덕여대 집회 현장을 그리며 “깃발은 휘어질지언정 꺾이지 않는다”는 명언을 다시금 전해주셨습니다.
가라연님은 춤추는 졸라맨을 그려 넣으며, K-pop이 울려 퍼지던 광장에서 함께 춤추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데모는 즐겁다”라는 또 하나의 명언도 남겨주셨죠.
정은님은 역사적인 남태령 현장을 그렸습니다. 그날, 정은님은 광화문 집회가 끝나고 집에 가려다 전철을 잘못 타 동작까지 와버려 운명을 받아들이고 남태령에 발을 디뎠다고 합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대치가 밤샘으로 이어졌지만, 다섯 개로 시작한 핫팩이 500개가 되는 기적을 마주하면서, 몸소 연대의 기적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한량님은 2016년 광화문 한복판, 차도 중앙선 위를 처음 밟던 순간을 그렸습니다. 평소에는 밟기 어려운 차도 위를, 다수의 시민들이 걷고 구르며 함께 목소리냈던 그 첫 순간을 ‘덕통의 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호범님은 장례식장을 그렸습니다. 장애인권운동 속에서 함께했던 활동가들을 떠올리며, 연대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살았던 그의 존재가 빛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기억하고 살아남아 투쟁하겠다고 굳게 약속하는 것.”
수철 활동가의 책모임 일지 더보기
📚 두 번째 책: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
두 번째로 함께 읽은 책은 최태현 작가의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였습니다. 이 책은 민주주의 자체가 가진 역설을 드러냅니다. 크게 제도로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파트와,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본질, 즉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파트로 구분됩니다.
책의 구성과 주요 내용
1장에서 5장까지는 민주주의의 작동원리인 ‘대의제’에서의 ‘대표’ 개념을 둘러싼 역설, ‘리더’의 존재가 발생시키는 역설을 살펴봅니다. 또한, 정책 의제가 설정되고 해결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취사 선택되거나 시민을 의심하고 예외를 발생시키는 등, ‘관료제’와 ‘정부’, ‘공무원’의 행정 과정이 지닌 역설을 비판합니다.
마지막 6장, 7장, 8장에서는 마음과 공공성, 작은 공을 다룹니다. 권력이 작동하는 조직 안에서 우리의 마음이 언제 부패할 수 있는지, 두려움과 사랑, 그리고 슬픔이라는 마음을 들여다보며, 공적 행위로서 위로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세균과 싸우는 백혈구같이, 민주주의를 회복시켜나가는 삶의 단위로서 작은 공들을 제안합니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수많은 역설을 인정하며, “완벽한 대안이란 없다”는 결론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설을 인정하고 성찰을 도모하는 데에서 절망으로서의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청년 책모임 세계관은 책을 1~3장, 4~5장, 6~7장, 8장으로 나누어 네 번의 모임에 걸쳐 깊게 이야기 나눈 뒤, 다섯 번째 모임에서 최태현 작가님을 모시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표와 리더
책을 읽는 동안 광장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어, ‘대표’와 ‘리더’라는 주제에 대해 더욱 깊이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배운 참된 민주주의의 모습에는 ‘철인왕’은 없었습니다. 모든 해결책을 갖고 있다며 등장하는 이들은 거짓말쟁이라고 작가는 지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런 이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철인왕’을 바라고 위임하는 관성이 이미 있다는 역설을 지적합니다. 철인왕이 나타나는 순간 그는 ‘권력’을 좇으며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정치의 팬덤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불신과 맹신 사이에 우리는 대표와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을까 고민을 이어 나갔습니다. 어려움을 해결해줄 것이라 기대되고 모든 것을 맡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자에게 그의 수행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동시에 팬덤화시키지 않고, 부패하지 않게 감시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갔습니다. 또는 그 일을 국가가 전담하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책에서 지적했듯이, 사회기술의 집약체로서 국가 관료제 역시 강력한, 때로는 유일한 해법이면서 문제 그 자체임을 확인했습니다.
관료제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사고는 책의 흐름에 따라 관료제에 닿았습니다. 국가 관료제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화, 숙의, 합의와는 거리가 있는 제도인,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는 예외주의를 낳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그 구체적인 예로서, ‘시민을 지키기 위한 국가’가 어떻게 ‘시민의 권리를 박탈하는지’에 대해 세월호 등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겪는 상황을 떠올렸습니다. 세월호참사 피해자가 공무원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을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그래서 정확히 원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이었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공무원이 이렇게 차갑게 말을 꺼내지 않게 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하는 한편, 우리도 우리를 관료적으로 기능하게 하는 곳에서 같은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죽지 않도록
우리는 공적 공간에 있을 때 우리 모두를 비인간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방법을 질문했습니다. 관료제 속에서는 자신의 행위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그에 대한 책임은 외부적으로 돌리기 쉽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최태현 작가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인용해 권위에 대한 무비판적 순종이 죽임을 정당화하도록 무심함을 알게 모르게 조장한다고 말합니다.
작가는 권력과 마음의 부패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하며, 헤겔의 ‘노예’ 비유를 듭니다. 여기서 노예란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하고 외부의 기준과 규범에 복종되어있는 상태이며,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공무원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작가는 공무원 역시 인간이며 시민이라는 점에서, 관료제라는 제도의 몰인격적 기계 부품으로 전락시킬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관료제에 대한 기능적 기대를 충족시키면서도 동시에 조직 안의 개인을 비인간화하지 않을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면 우리는 세월호참사 이후 해체된 기무사의 후신 ‘방첩사령부’에서 법무장교들이 계엄의 부당성을 외치거나, 출동한 군인들이 소극적으로 대처한 사례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외부의 규범에 종속되지 않고, 나 스스로의 율법, 윤리적 자율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세월호가 남긴 교훈 속에, 혹시 인간에 대한 존엄과 마음을 지키고 싶은 마음,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 대한 윤리적 자율성이 있었을까요?
민주주의의 마음과 공존
작가는 답 없는 질문 끝에 두 가지 방향성을 제안합니다. 바로 ‘민주주의의 마음’, 그리고 작은 공입니다.
작가는 ‘너그러움’이라는 마음에 대해 다루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회를 비판합니다.
관련해서 우리는 장애 당사자로서의 장애등급제에 대한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더 나아가 한부모가정 서류나 난민 증명에 대한 이야기까지 확장되었고, 실제 주변에 고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음을 떠올렸습니다.
특히 ‘시끄러운 사회적 약자’가 시혜적 태도를 비판하고 목소리를 내는 주체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 전장연 시위나, 재난참사 피해자, 여성들의 사회운동 등을 이야기하며, 진정성을 의심하기보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반을 모두가 함께 누리기 위해 더 너그러운 마음과 신뢰가 필요함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더 나아가 더 큰 재난과 죽음들이 몰려올 때 작가는, ‘우리가 이미 깊고 긴 슬픔을 느끼는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되짚으며, ‘공적인 슬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공적 행위 - 위로’를 말합니다.
이어 작가는 그 공적 행위를 위해 ‘시민적 상상력’을 제안합니다. 특히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한 상상력을 제안하는데요.
우리는 순환된 선의를 경험했던 지난 광장에서의 경험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남태령에서 노동자, 농민, 장애인, 여성, 퀴어가 너나 할 것 없이 연결되었던 연대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또 무안 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났을 때 무안에 있느라 서울에 못 갔다는, 혹은 서울에 있어서 무안에 못 갔다는 따뜻한 말들이 오고 갔던 실제 누군가들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지난 광장에서의 경험으로 누군가가 함께 하고 있다라는 한 축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인이 있을까 이야기하며, ‘인생을 경험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었다’는 문형배 재판관의 옛날 인터뷰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의 대화를 넘어, 더 나아가 우리는 극우와의 대화도 상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시 정희진 여성학자의 ‘공존’이라는 칼럼이 화두였습니다. 윤석열 구속을 외치기 위해 한남동에 가던 길에 탄핵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과 마주쳐 긴장감을 느꼈던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책의 끝에 다다르니, 이미 민주주의 자체에 갈등과 역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공존’이야말로, 스스로 극도의 인내와 긴장을 동반하는 신경증적 상황의 지속임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정희진은 “극우의 반대말은 공존”이라는 말로,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고 근절의 대상으로 삼는 방식이야말로 극우 그 자체이며, 역설적이지만 극우적 사고의 반대로서, 극우와의 공존이라는 갈등 상황을 견디는 힘이야말로 평화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책과 함께 관통하는 맥락이었습니다.
작은 공
작가는 마지막 장에서 작은 공을 많이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여기서 작은 공의 공은, 공공성의 공입니다. ‘작은 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다양한 결사체로서 ‘작은 공’은 실제 공간에 부피를 차지하고, 동시에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의 모임입니다. 정치적 삶의 출발점으로서 작은 공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특히 한 분은 탄핵 집회 동안 자원봉사단 활동을 하며 시민적 상상력과 너그러움을 전파할 의지가 있는, 나의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기대가 충족되고, 동시에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느꼈다며, 작은 공에 대한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모여 책을 읽는 우리도 ‘작은 공’이 아닐까? 이 안에서 여러 모순들과 역설이 있겠지만, 이 갈등과 역설을 안고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해나가는 것’을 결심하며 책모임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작가와의 만남
마지막 모임은 저자이신 최태현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최태현 작가님은 현재 4.16합창단에서 활동 중이신데요. 10주기가 되어서야 참여하시게 된 경험을 나눠주시며, ‘520번의 금요일처럼 어딘가 자리를 지키는 자들을 통해, 521번째 사람이 되었다’고 본인을 소개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솔직하게 이 책을 읽으며 “그래서 대안이 무엇입니까 선생님!”하고 여러 번 외치고 싶었지만,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는 것을, 역설과 모순, 절망과 희망을 순환하도록 우리를 대화로 이끄는 책의 흐름에 따라, 우리도 대안 없이 즐겁고 통찰력을 얻어가는 대화를 나누었음을 전했습니다.
작가님은 찬찬히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셨는지 전해주셨습니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누군가 악의 세력이 있어 이상적인 민주주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제도라도 역설을 지니고 있기에, 작가님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절망하는 순간,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장에서 증명해 보였듯이 민주주의의 위기가 왔을 때, 백혈구 같은 존재들, 미생물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지탱하듯이 ‘작은 공들이 민주주의를 지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작은 공들에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말을 전해주셨습니다.
각자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도 작가님께 전할 수 있었는데요. 한 분은 이번 시국을 통해, 같은 사회를 살고 있는데도 보이지 않던 것이 너무 많았다며, 수많은 투쟁 현장들을 직접 겪지 못하고 유가족들이 앞에서 모든 것을 겪은 뒤 변화된 것을 문자로만 만나거나, 제도적으로 만나게 된 점에 대해 자책을 느끼고 있었는데, ‘네가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라고 말씀하신 것이 위로가 되었고, ‘역설과 맹점에 대해 나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에 가닿을 수 있게 되어 좋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수동으로 굴러간다’는 말처럼, 함께 개입할 수 있는 틈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어, ‘사랑’이라는 감정에 기초해서 민주주의를 설명해주신 것에 공감이 많이 갔다며, ‘사랑한다’는 감정적 동기가 사회적 동기가 되어 소심한 내향적 사람들도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 느슨한 연대, 혹은 작은 공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 공감도 많이 되고 위로도 되었다는 말도 이어졌습니다.
또한 작가님이 던져주신 “공적 공간에 있을 때 우리 모두를 비인간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방법”에 대한 질문을 나누며, 우리 안의 윤리적 자율성,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지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직업을 가진 시민으로서, 호주머니 속 송곳처럼 뾰족하게 사는 것에 대해 조직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두려움이 많다는 솔직한 마음이 고백되었습니다.
이에 작가님은 가장 오래 살아남는 조직은 다양성이 보장되는 조직이라며 실패할 정도가 아니라면 이야기해도 된다, 자신 있게 말하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특히 ‘조직에서 권력을 탐하지 말라’는 겸손 어구와 다르게, 역설적으로 우리 모두가 겸손의 자세를 취할 때 조직에서 권력을 장악하는 자는 그 자리만을 보는 사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광화문-세월호-이태원-응원봉 광장을 경험한 세대의 정치적 자산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에 토양을 믿고 보다 주도적인 위치를 점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 마무리하며
세월호와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광장에서 현장학습하며 읽은 책 <아무튼 데모>와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는 우리가 겪는 절망이 역설적이게도 희망적인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으로서 우리가 이렇게 책을 읽는 모임이 ‘작은 공’으로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자리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매주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슈들과 솔직한 고민들을 나눌 수 있었던 귀한 시간들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4.16연대 청년 책모임은 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