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사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니까 할 뿐이죠.” -일오 님 인터뷰

2022-08-16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니까 할 뿐이죠.” 

-일오 님을 만나다

김 우 

“한일자(一)에 다섯오자(五)를 쓰나요?”

“네. 맞아요~”

지난 7월 16~17일 안산에서 4.16 활동가 전국 워크숍을 마치고 서울로 출발하며 다른 회원의 차를 얻어 탔다. 뒷자리에 함께 탄 일오 님과 처음 인사하며 우스갯소리로 물은 건데 빙고~ 정답이었다. 출생일인 8.15의 의미를 살려 아버님이 지어주셨다는데 쉬 잊히지 않을 이름이다.

일오 님의 4.16연대 회원가입은 최근이다. 회원이 권하는 회원 가입 캠페인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를 통해서다. 권유한 사람은 4.16약속지킴이도봉모임에서 함께하는 이경숙 님이다. “도봉모임 활동가분들 엄청 굉장히 존경하고 애정해요. 그분들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매주 금요실천을 저녁 7시부터 8시까지... 코로나 창궐했을 때 3~4주 쉬었을 뿐 꾸준히 계속해오고 있어요. 따라갈 수 없는 분들 뒤에서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지요. 경숙 님도 애정하는 분 중 한 명이고 천재지변이 있지 않은 한 (요청에) 무조건 오케이예요.”

게을러서 가입이 늦었을 뿐 마다할 게 없었다는 얘기다. 도봉의 ‘식구들’을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라는 노래 가사처럼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다니 말 다했다.

세월호참사가 터지고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돌아보거나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 동네의 작은 도서관 운영을 맡으며 2017년 주기 행사에 결합했다. 그때도 도봉모임에서 초기부터 활동하던 지인의 부탁과 제안이 있었다. 동네 엄마들과 같이 노란리본도 만들고 후원함도 만들어 놓으며 도봉모임에도 함께하게 됐다.

도서관 10년 정도 지킴이를 하다가 운영을 맡았대서 ‘벼락출세’ 아니냐고 물었더니 이사장 활동비는 0원이란다. 민간 사립 작은 도서관으로 돈 있는 누군가의 쾌척이 아니라 회원들의 회비로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자원 활동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엄마들이 책 모임 하며 아이들 데리고 놀이터에서 품앗이하다가 작은 공간을 얻고, 고유번호증을 받아 민간단체로 등록하고, 비영리사단법인을 만들어 공공기관에 위탁받는 과정이 있었다.

동네에서 필요해서 같이 만든 작은 도서관도 소중한 공간으로 24년째 같이 운영하고 있는데 서울시 기억공간에 담긴 큰 의미를 생각하면 누군가 없애라 옮겨라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해서 작년 광화문에서 철거한다고 했을 때나 이번에 서울시 기억공간 지키기 1인 시위에 참여한 것은 당연하였다.

번아웃이 와서 작년과 올해 도서관 활동을 잠시 쉬고 있다는 일오 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우리의 활동도 ‘굵고 짧게’가 아니라 ‘가늘고 길게’, 꾸준하고 질기게 가야 하는 영역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올 때까지 지내는 기우제처럼 진상규명 될 때까지, 안전 사회를 일굴 때까지 해야 하는 활동이니 말이다.

일오 님은 고2 때 사학재단 비리에 맞서 이사장과 그 가족들 퇴진 운동을 한 적이 있다. 87년이었고 학교로 백골단이 투입되고 전주로 가는 버스에선 경찰의 불심검문도 있었다. 그래도 대자보를 붙이고, 데모 하고, 정읍에서 전주에 있는 교육청으로도 몰려갔다. 완벽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하는 성과를 냈다. “그냥 해야 하는 거니까 한 거예요. 부당해서요.” 세월호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란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니까 할 뿐이죠.” 역사 속에 세월호를 어떻게 남겨갈 것인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고민도 깊어졌다.

“회원들 화이팅! 가족들 파이팅!” 시간이 많이 흘렀고 지치고 힘든 시간이다. 회원에게는 지속해서 열심히 같이 걸어가자는 말을, 가족에겐 옆에서 걷던 뒤에서 걷던 멀어지지 않을 테니 아프지 마시라는 말을 전하고 싶단다. “대통령님 파이팅!” 대통령 출근길 문답 기자회견에서 아리랑TV 기자가 외쳤다는 추한 외침 대신 일오 님의 아름다운 외침을 우리들 마음에 띄워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