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걸음걸음
-배용수 회원을 만나다-
김우
배용수 회원은 노들장애인야학(이하 노들야학)의 비장애인 활동가다. 노들은 노란 들판의 준말로 인간 존엄과 평등의 결실이 넘실대는 들판을 일컫는다. 노들의 활동가는 대안 세계라는 희망의 들판을 가꾸는 농부인 셈이다. 시혜와 동정이라는, 장애를 바라보고 대하는 차별적 시선과 몸짓을 넘어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해 있기 때문’에 협력하는 연대자인 것이다.
“이전에 대안학교 교사로 일했어요. 이후에 청각 장애인을 지원하는 법인에서 일했고요. 교육 관련 관심과 장애 관련 문제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겼던 거죠.”
비장애인으로 장애 인권 운동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었다. 거창하지 않았다.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과 만날 때도 즐거웠지만, 성인 중증장애인과 부대끼면서 같이 공부하는 것 역시도 재밌다고 했다. 1년 4개월 된 새내기 활동가라서 ‘신혼’의 시기처럼 재미진 것만은 아닌 듯했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는 느낌,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세월호참사 12주기 시민대회에서
배 회원에게 어린 시절을 물으니 ‘유별나지 않았다’ ‘특별하지 않았다’ ‘평범했다’라고 거푸 답했다. 그저 미술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그리는 것,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중학교 때도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고, 적당히 놀고 적당히 공부하며 평범하게’ 지냈다. 여전히 그림을 좋아했지만 관련해서 좌절한 경험도 있다.
“친구 중에 정말 잘 그리는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때 시작해도 늦지 않았는데 ‘나는 이 정도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림의 세계를 펼치기도 전에 접고, 그냥 좋아하는 취미 정도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래도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배 회원의 나중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비영리 법인에서 일하게 된 것도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에 능숙하고 홍보 담당이라는 업무에 끌렸던 이유가 있었다. 물론 ‘사회 문제 관련한 곳에서 일하고 싶은 욕심’도 컸다.
평범한 한 아이가 사회 문제 관련한 곳에서 일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궁금했다.
“20대 때 집회를 많이 다녔어요. 어디 속하진 않고요. 요즘 말벌 연대 시민처럼요.”
학생운동을 한 건 아니라고 했다. 선배가 집회에 같이 가자도 해서 몇 번 따라갔다가 혼자서도 가게 된 거였다.
“의제들을 봤어요. 장애인과 성소수자가 집회에서 당사자로 의제를 말하는 소리를 듣고 관심을 가지게 됐죠.”
배 회원은 집회 참가자들의 정당함, 전‧의경과 물대포를 통해 행사하는 공권력의 부당함을 보고 듣고 느끼며 성장 변화한 것이었다.
대학 입학 후 수업에 들어가는 것보다 노는 게 재미있어서 음악 동아리에서 랩도 해보고, 그러면서 듣기만 하던 음악의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자녀를 대안학교에 보내던 한 교수가 ‘넌 대안학교 교사하면 잘하겠다’라는 추천의 말을 듣고 대안학교 교사의 길을 생각해 보게 되고. 선배가 권한 집회에 참여하며 사회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듯 없는 듯 그 자리를 지키며 찬찬히 변화해 온 사람. 배 회원에게선 특별히 치열하다거나 두드러지게 활약한다거나 자신을 갈아 넣고 있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대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내내 오래도록 활동할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배 회원은 정의당 당원이기도 하다. 재작년 11월 수능일에 가입했다는데, 가입 계기도 왠지 배 회원다웠다. 그날 여러 단체의 성명서를 읽었는데, 윤석열 탄핵을 말하거나 수능의 결과가 좋길 기원한다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한데 정의당의 성명서는 달랐다고 했다.
“수능을 보지 않는 학생들에 관해 글을 쓴 게 인상적이었어요. 인생엔 한 가지 길만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요.”
수능일의 뉴스가 대학 정문 앞에서 십자가며 염주며 묵주며 저마다의 기복신앙에 기대선 부모 모습, 늦은 학생을 에스코트하는 경찰, 듣기 평가를 위해 헬리콥터가 나는 것도 주의하는 내용 등으로 도배되는 것은 나 역시도 불편하다. 온 나라가 수능에 들썩여야 마땅한 것처럼, 그게 상식인 것처럼 굴 때, 수능을 보지 않는 학생들에 관한 글이라니 신선하고 따듯했을 법하다.
배 회원이 4.16연대에 회원으로 가입한 건 최근이다. 하지만 그이가 5월 말에 열린,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4.16연대 부스를 보고 가입을 결정한 건 순간의 선택이 아니었다. 4.16연대와 노들야학은 서로 사무실의 지리적 위치가 멀지 않다. 출근 시간대 지하철 승강장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선전전에 함께할 수 있는지 노들야학이 물었고, 4.16연대가 흔쾌히 답했다. 노들야학도 세월호 참사 12주기 시민대회에 부스로 참여하는 등 서로의 기꺼운 연대는 이후로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관계성이 쌓이면서 회원 가입에 이른 것이었는데 자연스러운 순서이기도 했다. 그 순간 내린 것 같은 결정도 사실 그 밑자락엔 무언가 한 겹 두 겹 축적해 온 것이 있고, ‘지금이다’라는 계기를 만나 발화하곤 하니 말이다.
세월호참사 당일, 배 회원은 걱정하고 있는 친구에게 “다 구했대. 별일 아닐 거야”라고 건넸던, 오보에 편승했던 경솔함을 내내 후회했다.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유민 아빠가 단식할 때는 4박 5일 정도 출근하다시피 매일 세월호 광장을 찾아 물과 소금만 먹으며 동조 단식에 참여했다. 세월호참사 집회 때는 옷이 흠뻑 젖도록 캡사이신 섞인 물대포를 맞기도 했다. 거짓에 동조했다는 느낌이 ‘무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묵어왔던 마음이 4.16연대 회원 가입으로 이어진 것이기도 할 터였다.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
배 회원은 인터뷰 끄트러미에 진보적인 장애인 운동에도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탈시설 장애인이 어떻게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시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같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지역에서 함께 사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살 수 없다’라고 단순히 말하는 게 아니라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려운 게 있다고 느끼면 무엇을 바꿔야 할지 관심 가져주길 바라요.”
보행 약자에 초점을 맞추면 다른 이들에게도 아니 모든 이들에게 안전한 길이 된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일은 안전한 세상을 열어가는 열쇠다’라는 말, 망원역 지킴이들이 서명대 위에 세워 놓는 피켓의 문구이기도 하다. 서로 연결돼 있는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과 끈끈한 연대가 함께! 희망의 노란 들판을 열어갈 것이다
자연스러운 걸음걸음
-배용수 회원을 만나다-
김우
배용수 회원은 노들장애인야학(이하 노들야학)의 비장애인 활동가다. 노들은 노란 들판의 준말로 인간 존엄과 평등의 결실이 넘실대는 들판을 일컫는다. 노들의 활동가는 대안 세계라는 희망의 들판을 가꾸는 농부인 셈이다. 시혜와 동정이라는, 장애를 바라보고 대하는 차별적 시선과 몸짓을 넘어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해 있기 때문’에 협력하는 연대자인 것이다.
“이전에 대안학교 교사로 일했어요. 이후에 청각 장애인을 지원하는 법인에서 일했고요. 교육 관련 관심과 장애 관련 문제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겼던 거죠.”
비장애인으로 장애 인권 운동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었다. 거창하지 않았다.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과 만날 때도 즐거웠지만, 성인 중증장애인과 부대끼면서 같이 공부하는 것 역시도 재밌다고 했다. 1년 4개월 된 새내기 활동가라서 ‘신혼’의 시기처럼 재미진 것만은 아닌 듯했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자신에게 맞는 일을 하는 느낌,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세월호참사 12주기 시민대회에서
배 회원에게 어린 시절을 물으니 ‘유별나지 않았다’ ‘특별하지 않았다’ ‘평범했다’라고 거푸 답했다. 그저 미술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그리는 것,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중학교 때도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고, 적당히 놀고 적당히 공부하며 평범하게’ 지냈다. 여전히 그림을 좋아했지만 관련해서 좌절한 경험도 있다.
“친구 중에 정말 잘 그리는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때 시작해도 늦지 않았는데 ‘나는 이 정도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림의 세계를 펼치기도 전에 접고, 그냥 좋아하는 취미 정도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래도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배 회원의 나중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비영리 법인에서 일하게 된 것도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에 능숙하고 홍보 담당이라는 업무에 끌렸던 이유가 있었다. 물론 ‘사회 문제 관련한 곳에서 일하고 싶은 욕심’도 컸다.
평범한 한 아이가 사회 문제 관련한 곳에서 일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궁금했다.
“20대 때 집회를 많이 다녔어요. 어디 속하진 않고요. 요즘 말벌 연대 시민처럼요.”
학생운동을 한 건 아니라고 했다. 선배가 집회에 같이 가자도 해서 몇 번 따라갔다가 혼자서도 가게 된 거였다.
“의제들을 봤어요. 장애인과 성소수자가 집회에서 당사자로 의제를 말하는 소리를 듣고 관심을 가지게 됐죠.”
배 회원은 집회 참가자들의 정당함, 전‧의경과 물대포를 통해 행사하는 공권력의 부당함을 보고 듣고 느끼며 성장 변화한 것이었다.
대학 입학 후 수업에 들어가는 것보다 노는 게 재미있어서 음악 동아리에서 랩도 해보고, 그러면서 듣기만 하던 음악의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자녀를 대안학교에 보내던 한 교수가 ‘넌 대안학교 교사하면 잘하겠다’라는 추천의 말을 듣고 대안학교 교사의 길을 생각해 보게 되고. 선배가 권한 집회에 참여하며 사회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듯 없는 듯 그 자리를 지키며 찬찬히 변화해 온 사람. 배 회원에게선 특별히 치열하다거나 두드러지게 활약한다거나 자신을 갈아 넣고 있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대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내내 오래도록 활동할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배 회원은 정의당 당원이기도 하다. 재작년 11월 수능일에 가입했다는데, 가입 계기도 왠지 배 회원다웠다. 그날 여러 단체의 성명서를 읽었는데, 윤석열 탄핵을 말하거나 수능의 결과가 좋길 기원한다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한데 정의당의 성명서는 달랐다고 했다.
“수능을 보지 않는 학생들에 관해 글을 쓴 게 인상적이었어요. 인생엔 한 가지 길만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요.”
수능일의 뉴스가 대학 정문 앞에서 십자가며 염주며 묵주며 저마다의 기복신앙에 기대선 부모 모습, 늦은 학생을 에스코트하는 경찰, 듣기 평가를 위해 헬리콥터가 나는 것도 주의하는 내용 등으로 도배되는 것은 나 역시도 불편하다. 온 나라가 수능에 들썩여야 마땅한 것처럼, 그게 상식인 것처럼 굴 때, 수능을 보지 않는 학생들에 관한 글이라니 신선하고 따듯했을 법하다.
배 회원이 4.16연대에 회원으로 가입한 건 최근이다. 하지만 그이가 5월 말에 열린,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4.16연대 부스를 보고 가입을 결정한 건 순간의 선택이 아니었다. 4.16연대와 노들야학은 서로 사무실의 지리적 위치가 멀지 않다. 출근 시간대 지하철 승강장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선전전에 함께할 수 있는지 노들야학이 물었고, 4.16연대가 흔쾌히 답했다. 노들야학도 세월호 참사 12주기 시민대회에 부스로 참여하는 등 서로의 기꺼운 연대는 이후로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관계성이 쌓이면서 회원 가입에 이른 것이었는데 자연스러운 순서이기도 했다. 그 순간 내린 것 같은 결정도 사실 그 밑자락엔 무언가 한 겹 두 겹 축적해 온 것이 있고, ‘지금이다’라는 계기를 만나 발화하곤 하니 말이다.
세월호참사 당일, 배 회원은 걱정하고 있는 친구에게 “다 구했대. 별일 아닐 거야”라고 건넸던, 오보에 편승했던 경솔함을 내내 후회했다.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유민 아빠가 단식할 때는 4박 5일 정도 출근하다시피 매일 세월호 광장을 찾아 물과 소금만 먹으며 동조 단식에 참여했다. 세월호참사 집회 때는 옷이 흠뻑 젖도록 캡사이신 섞인 물대포를 맞기도 했다. 거짓에 동조했다는 느낌이 ‘무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묵어왔던 마음이 4.16연대 회원 가입으로 이어진 것이기도 할 터였다.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
배 회원은 인터뷰 끄트러미에 진보적인 장애인 운동에도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탈시설 장애인이 어떻게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시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같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지역에서 함께 사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살 수 없다’라고 단순히 말하는 게 아니라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려운 게 있다고 느끼면 무엇을 바꿔야 할지 관심 가져주길 바라요.”
보행 약자에 초점을 맞추면 다른 이들에게도 아니 모든 이들에게 안전한 길이 된다.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일은 안전한 세상을 열어가는 열쇠다’라는 말, 망원역 지킴이들이 서명대 위에 세워 놓는 피켓의 문구이기도 하다. 서로 연결돼 있는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과 끈끈한 연대가 함께! 희망의 노란 들판을 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