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16일의편지-2023년 4월] 2023 팽목 기억순례를 다녀와서-이석현

2023-04-14


팽목항을 찾아간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어요. 오래 전 진도로 출장을 갈 일이 있었고 그때 동료들과 함께 들른 게 처음이었죠. 팽목하을 돌아다니며 카메라에 팽목항의 모습을 담아왔었는데 등대 뒤편에 차려진 밥상(아마 학생들이 좋아했던 음식, 이를테면 피자나 햄버거가 올라가 있었던)은 슬퍼서 차마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 뒤로 팽목항에 갈 기회가 없었다가 "팽목 기억순례"가 있다는 것을 올해 처음 알게 되었어요. 저는 망설이지 않고 선뜻 신청하게 되었어요.

사실 혼자 간다는 것이 겁이 나고 부담스러웠어요. 출발 전날까지만 해도 가지 못 한다고 이야기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그러다가 문득 "혼자 가게 된다면 나는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죠. 그렇게 생각하다가 저처럼 "혼자서라도 오는 사람"이 많아지면 유가족분들에게 새로운 반가움과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는 사람도 없는 먼 곳에 혼자 가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잖아요? 제가 그런 작은 힘이 될 수 있다면 혼자서라도 팽목항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팽목순례버스에 올라타게 되었습니다.

집합장소에 도착한 뒤 우리는 팽목항을 향한 순례길에 올랐어요. '기억의 숲'을 거쳐 팽목항까지 걷는 순례길이었어요. 단순하게 앞만 보고 걷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어요. 특히 걷는 동안 미소를 싱긋 지으며 걷는 사람들의 모습과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모습, 그리고 자갈길을 걸을 때 나는 자갈돌 부딪히는 소리들마저도 봄바람에 섞여 희망의 향기가 되는 것 같았어요. 우리가 걸으면서 내뿜는 희망이 유가족분들에게는 더 큰 응원으로 다가가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죠.

팽목항에 도착하고 밴드 '언제나 봄'의 공연이 있었고 중간중간에 시민발언이 있었어요. 그중 학생들이 발언하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우리 세대의 아픔을 우리보다 어린 학생들이 함께 위로해주고 있었고 지금 우리보다도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 줄 것 같았어요. 고맙고 미안했어요. 공연과 발언이 끝난 후엔 모두 함께 방파제 난간에 현수막을 매달며 순례길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모이고 걸어가던 사람들은 언젠가 광장에서, 거리에서 혹은 무대에서 한 번씩은 만나본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서로 얼굴은 기억할 수 없겠지만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이 순례길에 참여한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까 다음에 올 때는 모르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길 바라요. 지금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팽목 기억순례에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