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상처 속에서도 끊임없는 성장의 길을 가다-세월호 가족 동수 아빠 인터뷰
김 우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이하 가협) 진상규명부서장인 동수 아빠는 간담회와 책 편찬 준비로 한창 바빴다. 간담회는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의 의미와 향후 과제’를 사참위 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짚는 전국 순회 간담회였다. 책 편찬은 세월호참사 이후 4.16운동이 걸어온 길 10년을 담는 작업이었다. 4.16재단에서 지원 나온 이들과 같이 초고를 완성했는데 그간의 세월이 짧지 않은 만큼 분량은 500페이지를 훌쩍 넘어섰다. 가협의 의견 물어 반영하며 수정 과정을 거치면 7~8월에 시민들에게 배포할 수 있을 듯했다.
관련 재판이며 특조위(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국민조사위(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 선조위(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 사참위(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과정을 책에 담으며 ‘이땐 이랬지’하는 여러 생각이 피어올랐다. 잘했다 싶은 것도 있고 아쉬움이 큰 것도 많았다. 세월호 인양과 선체 직립은 잘한 일로 떠올려지고, 1기 특조위 시행령 관련해선 조금 더 싸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식이다.
예전에 동수 아빠의 설명을 들으며 인양한 세월호 안을 둘러본 기억이 났다.
“세월호라는 배에 들어가는 일도 쉽지 않으실 텐데 시민들에게 설명까지 하셨죠.”
“힘든 부분이지만 반면에 알릴 기회니까요. 의무감이 있어요.”
의무감. 떠난 아이들을 헛된 희생자로 만들지 않도록 남은 자의 몫을 하려는 꿋꿋한 의무감으로 버텨온 시간. 동수 아빠는 올해 진상규명부서장 4년 차다. 인양 후 인양분과가 진상규명부서로 통합되기 전에는 인양분과장을 맡았었다. 내년이면 부서장 임기가 끝난다. 추진 중인 걸 이어가기 위해 계속 맡는 게 나을지, 몸 상태를 생각해서 잠시 쉬는 게 좋을지 고민 중이다.
“계속 아프시고, 많이 아프시고 그래요.”
동수 아빠도 아프지만 비단 동수 아빠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난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들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가면 갈수록 더하다는 말이었다.
“좋아지는 사람보다 더 안 좋아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게 쉽게 뜻대로 되지 않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되는 게 없으니까. 심적으로 그런 부분들이 심해지는 거죠. 조바심이 나고, 사람 만나는 게 힘들어져요.”
‘어느 순간에 와버리는’ 공황장애. 이대로 세월호참사가 잊히지 않도록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또 하며 진상규명과 안전 사회를 위한 활동을 해야 하는데,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려워지는 상황과 맞닥뜨리는 아이러니라니.
“한 번의 희생에 그치지 않고 상처를 계속 받아야 하는 거. 그래서 아프실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안 아픈 사람이 없다시피 한, 가협 부모들의 건강 관련 동수 아빠가 내리는 진단이었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단원인 동수 엄마도 공황장애 약을 먹어가며 활동하고 있다.
“좋아요. 세월호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치유에도 도움이 돼서요.”
동수 엄마가 연극 활동을 하는 게 좋다는 동수 아빠. 세월호 가족들과 아이들 이야기를 함께하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데도 도움이 큰 활동을 하고 싶은 생각이 동수 아빠에게도 있다. 동수가 과학 과목을 좋아하고, 로봇 만들길 즐겼던 것처럼 동수 아빠도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했었다. 어릴 때는 장난감 조립하길 좋아하고, 고등학교 때는 다과상 제작하는 큰삼촌네 가서 나무로 만드는 걸 즐겨 했다. 4.16목공방에서 동수 아빠가 만든 제품을 보게 될 날도 올 수 있을까, 꼭 왔으면 하는, 언젠가의 날이다.
“건강 문제도 크고, 체념과 낙담도 있고. 근본적인 건 경제적인 활동을 해야 하니까요.”
그동안은 ‘말이 없어도 서로 위로가 되는’ 같은 처지의 부모들과 의견 충돌도 하며 같이 커나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가협에서 활동하는 부모의 수는 줄고, 가협에서 역할을 맡고 있는 부모의 업무량은 늘어만 간다.
‘끊임없이 상처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성장해 온 시간이었노라’는 동수 아빠. 해저에서 끌어올려진, 상처투성이 세월호 역시 안전 사회 교육의 장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해체 없이 목포 신항에서 옆 부지로 옮겨 존치할 계획인데 해수부와 계속 협의 중인 사안이 있다. 세월호 안에 전시하고 설명하는 기록의 공간을 꾸미는 것은 기본이요, 필수적인 사안인데 해수부의 답변은 여전히 세월호 밖에 따로 체험장을 만들겠다는 것이어서 그렇다. 이러한 협의도 산적한 숙제 중 하나일 뿐이다.
“가장 힘든 건 지금 상황이에요. 풀려나가야 탄력을 받을 텐데 그런 상황이 아니다 보니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많이 힘들어요.”
박근혜 정권 때는 힘을 합해 싸우기라도 했는데, 문재인 정권 때부터는 내부의 다른 소리가 많았다.
“진상규명이 다 됐네, 안 됐네로 나눠지기 시작하고, 선조위 보고서가 나오고 하면서 열린안과 내인설로 나눠지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가족들부터 나눠지기 시작하니 시민들도 나뉘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 간의 이견을 토론해야 하는데 시간이 짧아 결론 내리지 못하고, 장황한 글로 하게 되며 오해도 있고. 그렇게 반복되고...”
힘든 시기 위로를 주는 것은 무엇일까. ‘격해질 수 있으니까, 사고 칠 거 같아서’ 세월호참사와 동시에 끊은 술은 가끔 한두 잔 마시는 정도인데 담배가 주는 위로는 끊지 못했다. 연대 시민들이 담배만큼의 위로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건넸더니 동수 아빠가 모처럼 웃었다.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로 박근혜가 탄핵당했을 때 크게 감동받았다고 했다.
“그분들이 없었으면 이렇게 못 왔죠. 시민들의 힘이 없었으면, 시민분이 안 계셨으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대형 참사에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바로 시민들이 있어 이때까지 싸워올 수 있었다는 동수 아빠.
“10년의 세월 동안 잘 버티며 끊임없이 싸워왔어요.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고 행동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참사 10주기라서 더 바쁘고 많이도 바쁠 동수 아빠가 스스로에게 하는 당부이자 연대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간결하고도 간절한 마음이다.
끊임없는 상처 속에서도 끊임없는 성장의 길을 가다-세월호 가족 동수 아빠 인터뷰
김 우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이하 가협) 진상규명부서장인 동수 아빠는 간담회와 책 편찬 준비로 한창 바빴다. 간담회는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의 의미와 향후 과제’를 사참위 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짚는 전국 순회 간담회였다. 책 편찬은 세월호참사 이후 4.16운동이 걸어온 길 10년을 담는 작업이었다. 4.16재단에서 지원 나온 이들과 같이 초고를 완성했는데 그간의 세월이 짧지 않은 만큼 분량은 500페이지를 훌쩍 넘어섰다. 가협의 의견 물어 반영하며 수정 과정을 거치면 7~8월에 시민들에게 배포할 수 있을 듯했다.
관련 재판이며 특조위(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국민조사위(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 선조위(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 사참위(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과정을 책에 담으며 ‘이땐 이랬지’하는 여러 생각이 피어올랐다. 잘했다 싶은 것도 있고 아쉬움이 큰 것도 많았다. 세월호 인양과 선체 직립은 잘한 일로 떠올려지고, 1기 특조위 시행령 관련해선 조금 더 싸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식이다.
예전에 동수 아빠의 설명을 들으며 인양한 세월호 안을 둘러본 기억이 났다.
“세월호라는 배에 들어가는 일도 쉽지 않으실 텐데 시민들에게 설명까지 하셨죠.”
“힘든 부분이지만 반면에 알릴 기회니까요. 의무감이 있어요.”
의무감. 떠난 아이들을 헛된 희생자로 만들지 않도록 남은 자의 몫을 하려는 꿋꿋한 의무감으로 버텨온 시간. 동수 아빠는 올해 진상규명부서장 4년 차다. 인양 후 인양분과가 진상규명부서로 통합되기 전에는 인양분과장을 맡았었다. 내년이면 부서장 임기가 끝난다. 추진 중인 걸 이어가기 위해 계속 맡는 게 나을지, 몸 상태를 생각해서 잠시 쉬는 게 좋을지 고민 중이다.
“계속 아프시고, 많이 아프시고 그래요.”
동수 아빠도 아프지만 비단 동수 아빠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난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들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가면 갈수록 더하다는 말이었다.
“좋아지는 사람보다 더 안 좋아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게 쉽게 뜻대로 되지 않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되는 게 없으니까. 심적으로 그런 부분들이 심해지는 거죠. 조바심이 나고, 사람 만나는 게 힘들어져요.”
‘어느 순간에 와버리는’ 공황장애. 이대로 세월호참사가 잊히지 않도록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또 하며 진상규명과 안전 사회를 위한 활동을 해야 하는데,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려워지는 상황과 맞닥뜨리는 아이러니라니.
“한 번의 희생에 그치지 않고 상처를 계속 받아야 하는 거. 그래서 아프실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안 아픈 사람이 없다시피 한, 가협 부모들의 건강 관련 동수 아빠가 내리는 진단이었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단원인 동수 엄마도 공황장애 약을 먹어가며 활동하고 있다.
“좋아요. 세월호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치유에도 도움이 돼서요.”
동수 엄마가 연극 활동을 하는 게 좋다는 동수 아빠. 세월호 가족들과 아이들 이야기를 함께하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데도 도움이 큰 활동을 하고 싶은 생각이 동수 아빠에게도 있다. 동수가 과학 과목을 좋아하고, 로봇 만들길 즐겼던 것처럼 동수 아빠도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했었다. 어릴 때는 장난감 조립하길 좋아하고, 고등학교 때는 다과상 제작하는 큰삼촌네 가서 나무로 만드는 걸 즐겨 했다. 4.16목공방에서 동수 아빠가 만든 제품을 보게 될 날도 올 수 있을까, 꼭 왔으면 하는, 언젠가의 날이다.
“건강 문제도 크고, 체념과 낙담도 있고. 근본적인 건 경제적인 활동을 해야 하니까요.”
그동안은 ‘말이 없어도 서로 위로가 되는’ 같은 처지의 부모들과 의견 충돌도 하며 같이 커나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가협에서 활동하는 부모의 수는 줄고, 가협에서 역할을 맡고 있는 부모의 업무량은 늘어만 간다.
‘끊임없이 상처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성장해 온 시간이었노라’는 동수 아빠. 해저에서 끌어올려진, 상처투성이 세월호 역시 안전 사회 교육의 장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해체 없이 목포 신항에서 옆 부지로 옮겨 존치할 계획인데 해수부와 계속 협의 중인 사안이 있다. 세월호 안에 전시하고 설명하는 기록의 공간을 꾸미는 것은 기본이요, 필수적인 사안인데 해수부의 답변은 여전히 세월호 밖에 따로 체험장을 만들겠다는 것이어서 그렇다. 이러한 협의도 산적한 숙제 중 하나일 뿐이다.
“가장 힘든 건 지금 상황이에요. 풀려나가야 탄력을 받을 텐데 그런 상황이 아니다 보니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많이 힘들어요.”
박근혜 정권 때는 힘을 합해 싸우기라도 했는데, 문재인 정권 때부터는 내부의 다른 소리가 많았다.
“진상규명이 다 됐네, 안 됐네로 나눠지기 시작하고, 선조위 보고서가 나오고 하면서 열린안과 내인설로 나눠지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가족들부터 나눠지기 시작하니 시민들도 나뉘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 간의 이견을 토론해야 하는데 시간이 짧아 결론 내리지 못하고, 장황한 글로 하게 되며 오해도 있고. 그렇게 반복되고...”
힘든 시기 위로를 주는 것은 무엇일까. ‘격해질 수 있으니까, 사고 칠 거 같아서’ 세월호참사와 동시에 끊은 술은 가끔 한두 잔 마시는 정도인데 담배가 주는 위로는 끊지 못했다. 연대 시민들이 담배만큼의 위로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건넸더니 동수 아빠가 모처럼 웃었다.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로 박근혜가 탄핵당했을 때 크게 감동받았다고 했다.
“그분들이 없었으면 이렇게 못 왔죠. 시민들의 힘이 없었으면, 시민분이 안 계셨으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대형 참사에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바로 시민들이 있어 이때까지 싸워올 수 있었다는 동수 아빠.
“10년의 세월 동안 잘 버티며 끊임없이 싸워왔어요.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고 행동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참사 10주기라서 더 바쁘고 많이도 바쁠 동수 아빠가 스스로에게 하는 당부이자 연대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간결하고도 간절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