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리는 것이 부활이죠 -내친소 민숙희 님을 만나다
김 우
민숙희 님은 6월 2일 따끈따끈 신입회원으로 들어왔다. 회원 배가 캠페인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내친소)’를 통해서였다. 특이점은 내친소 1호 회원이자 보름 만에 다른 회원 창출까지 한 점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강하니 회원이 추천해서 회원이 됐는데 또 다른 신입인 최재인 회원의 권유자가 된 것이다.
회원이 줄어서 운영이 어렵다는 말에 고민 없이 선뜻 회원이 됐다. 세월호 문제에 관심 많고 항상 노란리본을 달고 다니는데 이렇게 회원제로 운영하는 걸 잘 몰랐기에 안내받자마자 ‘아, 그런 게 있었구나.’ 기쁘게 가입했다. 그동안 세월호 관련 집회 참석도 여러 차례 했는데 무언가 해결되는 게 없어서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회원이 되어서 무언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게 면죄부라도 받은 것처럼 다행이다.
민숙희 님의 직업은 대한성공회 사제다. 2005년 성공회 여성 사제로 서품받았다. 천주교에 정의구현사제단이 있다면 성공회엔 정의평화사제단이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 연합예배가 광화문의 세월호 광장에서 교단마다 돌아가며 열릴 때 성공회 순서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 강화에서 지내면서도 매주 갈 수밖에 없는 마음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가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인 성주간이었다. 그 주간의 끝이 부활절이었다. 뉴스로 사건을 접했고 오보를 통해 다 살았다고 안도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매일 오전 5시에 올리는 새벽 미사에서 울면서 설교했던 기억이 있다. 구조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니까 생존자가 없을 거 같아서였다. 교인들과 교회 앞 나무에 노란리본을 걸었다. 살아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있었으면 하는 염원이었다.
생존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서 부활절을 기쁘게 보낼 수 없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성탄절이나 부활절은 종교인에게 특별한 날이고 큰 절기지만 특별히 잔치 없이 보냈다. 많은 사람이 바다에 빠졌는데 국가가 아무것도 해주는 것 없이 바닷속에 빠진 채로 있으니 교인 모두 침통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희생자의 부활 없는 부활절이었지만 부활은 단순히 육신이 되살아온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참사 1주기 때 희생자의 이름을 다 올리고 한 명씩 다 불렀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안에서 부활시키자는 의미였다.
문재인 정권을 평가한다면 4대강 문제와 세월호 문제를 해결 안 한 게 특히 불만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노란리본을 달고 단식도 하고 해서, 박주민 의원은 세월호 가족들이 선거운동 열심히 해서 국회의원 됐으니’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 당선되고 나서는 “너무나 노력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데 안 했다.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선거에서도 지는 거고 대선에서도 다 돌아서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이놈이나 저놈이나 안 하긴 마찬가진데.” 씁쓸한 생각이다.
민숙희 님은 정치인들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금수저들이 바다에 빠졌다면, 유력 정치인의 아들딸이 있었다면 이렇게 처리했을까. 흙수저들의 죽음에 그 사람들이 나설 거 같지 않다’는 생각이다. 역사의 유의미한 진전은 빈민과 노동자 즉 민중들이 이룬 것이지 정치인들이 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에 기대하기도 했었으나 역시 또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세월호 운동에 동력이 떨어지고 4.16연대에 회원이 줄고 운영이 어렵다니 오히려 맘이 더 움직였다.
“작은 힘이라도 하나하나 쌓아 올리며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대단히 큰 역할을 하지 않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 늘어나면 정치권도 우습게 보지 않을 듯하고 유가족에게도 위로가 될 듯해요.”
성공회 대성당이 서울 시청 맞은편에 있으니 사제들이 광화문 분향소에 같이 가서 기도하는 일이 잦았다. 천막 속에서 더우나 추우나 대가 없이 일하던 많은 이들을 기억한다. 어쩌면 믿음이 좋다는 성직자들보다 진정성이 크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마음들을 다시 모아가는 것이 부활일 것이다. 민숙희 님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세월호 희생자의 부활이라 여긴다.
되살리는 것이 부활이죠 -내친소 민숙희 님을 만나다
김 우
민숙희 님은 6월 2일 따끈따끈 신입회원으로 들어왔다. 회원 배가 캠페인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내친소)’를 통해서였다. 특이점은 내친소 1호 회원이자 보름 만에 다른 회원 창출까지 한 점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강하니 회원이 추천해서 회원이 됐는데 또 다른 신입인 최재인 회원의 권유자가 된 것이다.
회원이 줄어서 운영이 어렵다는 말에 고민 없이 선뜻 회원이 됐다. 세월호 문제에 관심 많고 항상 노란리본을 달고 다니는데 이렇게 회원제로 운영하는 걸 잘 몰랐기에 안내받자마자 ‘아, 그런 게 있었구나.’ 기쁘게 가입했다. 그동안 세월호 관련 집회 참석도 여러 차례 했는데 무언가 해결되는 게 없어서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회원이 되어서 무언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게 면죄부라도 받은 것처럼 다행이다.
민숙희 님의 직업은 대한성공회 사제다. 2005년 성공회 여성 사제로 서품받았다. 천주교에 정의구현사제단이 있다면 성공회엔 정의평화사제단이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 연합예배가 광화문의 세월호 광장에서 교단마다 돌아가며 열릴 때 성공회 순서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 강화에서 지내면서도 매주 갈 수밖에 없는 마음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가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인 성주간이었다. 그 주간의 끝이 부활절이었다. 뉴스로 사건을 접했고 오보를 통해 다 살았다고 안도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매일 오전 5시에 올리는 새벽 미사에서 울면서 설교했던 기억이 있다. 구조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니까 생존자가 없을 거 같아서였다. 교인들과 교회 앞 나무에 노란리본을 걸었다. 살아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있었으면 하는 염원이었다.
생존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서 부활절을 기쁘게 보낼 수 없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성탄절이나 부활절은 종교인에게 특별한 날이고 큰 절기지만 특별히 잔치 없이 보냈다. 많은 사람이 바다에 빠졌는데 국가가 아무것도 해주는 것 없이 바닷속에 빠진 채로 있으니 교인 모두 침통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희생자의 부활 없는 부활절이었지만 부활은 단순히 육신이 되살아온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참사 1주기 때 희생자의 이름을 다 올리고 한 명씩 다 불렀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안에서 부활시키자는 의미였다.
문재인 정권을 평가한다면 4대강 문제와 세월호 문제를 해결 안 한 게 특히 불만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노란리본을 달고 단식도 하고 해서, 박주민 의원은 세월호 가족들이 선거운동 열심히 해서 국회의원 됐으니’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 당선되고 나서는 “너무나 노력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데 안 했다.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선거에서도 지는 거고 대선에서도 다 돌아서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이놈이나 저놈이나 안 하긴 마찬가진데.” 씁쓸한 생각이다.
민숙희 님은 정치인들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금수저들이 바다에 빠졌다면, 유력 정치인의 아들딸이 있었다면 이렇게 처리했을까. 흙수저들의 죽음에 그 사람들이 나설 거 같지 않다’는 생각이다. 역사의 유의미한 진전은 빈민과 노동자 즉 민중들이 이룬 것이지 정치인들이 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에 기대하기도 했었으나 역시 또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세월호 운동에 동력이 떨어지고 4.16연대에 회원이 줄고 운영이 어렵다니 오히려 맘이 더 움직였다.
“작은 힘이라도 하나하나 쌓아 올리며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대단히 큰 역할을 하지 않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 늘어나면 정치권도 우습게 보지 않을 듯하고 유가족에게도 위로가 될 듯해요.”
성공회 대성당이 서울 시청 맞은편에 있으니 사제들이 광화문 분향소에 같이 가서 기도하는 일이 잦았다. 천막 속에서 더우나 추우나 대가 없이 일하던 많은 이들을 기억한다. 어쩌면 믿음이 좋다는 성직자들보다 진정성이 크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마음들을 다시 모아가는 것이 부활일 것이다. 민숙희 님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세월호 희생자의 부활이라 여긴다.